18일 판문점에서 예정됐던 남북경협합의서 발효 통지문 교환절차가 북한의 약속위반으로 무산됨으로써 남북경협합의서 발효도 불발로 끝났다. 북한이 `반핵ㆍ반김 8.15국민대회`에서 김정일 초상화와 인공기가 훼손된 것을 이유로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불참의사를 밝힌 뒤의 일이어서 두 사건사이에는 상호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유감표명이후 북측이 유니버시아드 참가를 통보해 온 것은 다행이다. 경협합의서 발효 약속도 지켜지길 바란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은 약속파기를 식은 죽 먹듯이 해왔던 터라 이번 일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약속파기는 그 방법부터 무례하기 짝이 없다. 외교관례나 국제법 관례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사전에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법이 별로 없다. 경협합의서 발효통지문 교환도 당일에야 `좀더 기다려 달라`는 것이 설명의 전부 였다.
바로 이 같은 자세로 인해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수 없는 협상상대로 낙인이 찍힌지 오래다. 북한 핵문제를 다루기 위한 6자회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다. 북한과 미국은 양자협상을 통해 제네바합의를 성사시켰으나 북한이 핵개발계획을 추진함으로써 합의를 파기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그래서 주변국들이 입회한 자리에서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것이 미국의 6자회담 구상이다.
남북경협합의서 발효절차는 원래 지난 6일에 하기로 돼 있었다가 작고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대한 추모행사와 관련해 18일로 연기하자고 북측이 제의했던 것이다.
그런 약속을 일언반구의 이유설명도 없이 무산시키는 북한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자세가 바뀌지 않는 한 남북경협합의서가 발효된다 하더라도 이행이 담보되지 않는다. 경협은 자본의 이동을 수반하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신뢰가 확보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성사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남북경협의 핵심 사업인 개성공단 사업은 국내기업들의 높은 관심으로 인해 성공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던 터였다. 북한의 이번 태도는 남측 기업인들의 북한 진출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다. 북한은 작은 약속부터 지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초상화 및 인공기 훼손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고, 정부도 사과의 뜻을 전달키로 했다. 이념단체의 확신에 따른 행동은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 개인적 행동에 정부가 유감을 표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남북관계의 진전이라는 틀에서 보면 이해되는 면도 있다. 북한이 남측의 성의 표시에 대해 유니버시아드 출전으로 호응한 것은 다행이고 경협합의에도 그렇게 나오길 바란다.
<온종훈기자 jhoh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