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한유통ㆍ웰롭 등의 부실 계열사 빚을 갚기 위해 다른 계열사에 채무를 떠넘긴 배임 혐의를 유죄로 본 기존 판결을 대법원은 대부분 확정했다. 그룹 차원에서 부실해진 계열사를 살리기 위한 '경영상 판단'에 불과했다는 김 회장 측의 변론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일부 배임행위를 범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 파기환송된 일부 유죄 판단이 무죄로 바뀔 가능성이 높으며 어느 정도 감형이 이뤄지리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이 서울고법에 재심리를 요구한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부실 계열사를 다른 계열사가 지급보증하는 것과 관련해 동일한 채무 변제를 위한 다른 금융기관에서 다시 지급보증을 한 행위는 별도의 배임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금융기관만 바뀌었기에 새로운 손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후행 지급보증에 유죄를 선고한 원심에 법리 오해가 있었다고 판시했으며 이에 따라 해당 부분은 파기환송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행위가 무죄로 바뀌면 배임 피해액도 160억원가량 줄어든다.
대법원은 부동산 저가 매각에 따른 손해도 다시 계산해 유ㆍ무죄 여부를 재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김 회장이 한화석유화학 소유의 시가 713억원짜리 여수시 소호동 부동산을 441억원에 팔도록 지시해 272억원의 배임 피해액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부동산의 감정평가 자체가 잘못됐기에 이를 기준으로 유죄를 선고한 원심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김 회장의 상고심 변론을 맡은 강석훈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법원은 해당 부동산의 토지 시가가 445억원 상당에 불과하다고 판단했고 이 판단이 파기환송심에서도 이어진다면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이럴 경우 272억원의 배임 피해액은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부동산이 또 다른 계열사에 고가 매각되는 과정에서 김 회장에 횡령ㆍ배임죄가 추가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된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김 회장의 배임 피해액이 400억원 이상 줄어드는 만큼 감형 가능성을 기대해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항소심에서 인정된 배임 피해액은 1,797억원이다.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줄어든 배임 액수도 여전히 양형기준상 최고액인 300억원을 넘긴 하지만 감형 가능성이 적진 않다"며 "양형기준은 권고안일뿐 법률상 효력이 없고 배임액이 줄어든다면 형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한 관계자도 "김 회장이 항소심 선고 전 1,180억원을 공탁했는데 배임 액수가 줄어든다면 대부분 피해를 변제한 셈이 된다"며 "경제 범죄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양형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며 피해액이 대부분 변제된다는 것은 매우 유리한 양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징역 3년의 실형 선고가 집행유예로 바뀔 정도 큰 형량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법원 관계자는 "횡령ㆍ배임 이득액이 300억원 이상인 경우 징역 5~8년이 기본인데 징역 3년은 법원 양형기준 권고안의 최저 형량인 셈"이라며 "파기환송 재판부가 아무리 재량을 발휘한다고 해도 큰 형량 변화를 결정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상고심을 진행하며 새로이 주장한 부분도 있는데 대법원이 1ㆍ2심에서 다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단을 유보한 쟁점이 몇 가지 있다"며 "한 번 더 다퉈볼 기회를 얻었다는 점만 해도 고무적인 결과"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