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교육감과 교육 당국이 정면으로 마주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원능력개발평가(교원평가)를 거부하거나 폐지할 움직임을 보이자 교육과학기술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지난 1일 취임하자마자 현행 교육평가제의 근거 규정인 '교원평가 시행규칙' 폐지안을 입법예고했다. 교원평가를 폐지하는 대신 수업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자율적 교육평가'를 하반기에 도입할 계획이다.
김 교육감은 6일 "현행 교원평가제는 교과부의 생각과 달리 평가 결과가 인사와 급여에 반영될 수밖에 없어 자칫 '교원 줄 세우기' 등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면서 "교원평가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고 교수학습과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업평가 방식인 자율적 교육평가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북도교육청의 방침에 교과부는 당혹해하면서도 평가를 거부할 경우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맞섰다. 교과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않고 교육규칙 폐지를 서두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시행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거부할 경우 가능한 법적 조치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도교육청은 오는 13~14일에 치러지는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도 각 학교가 체험학습이나 자습ㆍ독서 등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교과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
전교조 지부장 출신인 민병희 교육감이 당선된 강원도교육청도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학생ㆍ학부모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강원도교육청은 지난주부터 학생·학부모가 체험학습을 요구할 때 학교장이 이를 존중하고 학교에 미응시자가 있을 경우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담은'학업성취도 평가 시행계획 보완(안)'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미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실시한 교사에 대해 파면 또는 해임 등 중징계를 한 적이 있는 교과부는 이들 교육청들이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하려 할 경우 직무이행명령을 내리고 그래도 거부하면 해당 교육감을 고발할 방침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과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와 교원평가에 대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만 당장 거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교조 서울지부 등이 교원평가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거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또 다시 대규모 교원 징계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들의 처리를 둘러싸고 교과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계에서는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권한 및 역할 분담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같은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선거에서 당선됐다고 기존 정부 정책을 뒤집으려는 진보 교육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이성호 중앙대 교수(교육학)는 "현행 교원평가제와 학업성취도 평가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를 도입하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안다면 교육감이라고 함부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라며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은 자신을 지지한 사람보다 반대한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