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발생한 서울 영등포구 소재 초등학교 1학년 A(8)양 성폭행 사건(본보 9일자 16면)의 피의자 김모(44)씨는 전형적인 인면수심(人面獸心)이었다. 21세 때 이미 끔찍한 성폭행을 저지르고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도 반성은커녕 같은 범죄를 되풀이했다.
범인은 누구?
9일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김씨는 1987년 강도ㆍ강간 혐의로 15년간 복역했다. 당시 그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을 강간한 뒤 강도 짓을 하는 파렴치한 범행을 저질렀다. 2002년 출소한 뒤에는 변변한 직업 없이 공사현장을 전전하며 폭력 등 여러 차례 철창 신세(전과 12범)를 졌다.
2006년엔 15세 소년을 상대로 동성(同性) 성추행까지 저질렀다. 당시 김씨는 범행을 무마하기 위해 피해소년의 부모에게 "네 아들이 동성애인자인 걸 세상에 알리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은 합의가 이뤄져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번 사건에서도 김씨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A양에게 접근해 목에 문구용 커터를 들이대고 자신의 집으로 끌고가 집 근처에 다다르자 위치를 숨기기 위해 A양의 눈을 가린 것으로 전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A양 사건은 무엇보다 벌건 대낮에, 교내에서 납치가 자행됐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사회에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과 해당학교 등에 따르면 사건 당일은 매달 한 차례 시행하는 자율휴업일. 학교 관계자는 "방과후학교 수업만 있는 휴일이다 보니 교내 안전지킴이도 없었고 주변의 인적도 드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내 안전지킴이는 월~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지만 토ㆍ일요일과 휴일은 나오지 않는 데다, 혼자서 교내 전체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문과 후문 등 교내에 폐쇄회로TV가 6대 설치돼 있지만 범죄 억제수단이 되지 못했다. 더욱이 범인 김씨가 A양을 학교에서 납치해 1km 정도 떨어진 자신의 집까지 부자연스럽게 끌고 갔는데도 누구 하나 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
초동 대응마저 늦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김길태 사건의 학습효과에 따른 경찰의 발 빠른 초기대응이었다. A양의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한 것은 오후 1시30분께.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으러 간 아이가 귀가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신고를 한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직감한 경찰은 서장의 지휘 아래 50여명을 투입해 주변을 샅샅이 탐문하며 범인을 추적했다. 폐쇄회로TV를 통해 용의자도 확인했다.
오후 2시30분 성폭행을 당한 뒤 혼자 학교로 돌아온 A양은 출동해있던 경찰과 부모에게 발견됐다. 신고 접수 5시간이 지난 오후 7시께 피의자 김씨를 발견한 경찰은 수백여m 추격전을 벌인 끝에 김씨를 붙잡았다. 이 과정에 한 경찰관은 김씨가 휘두른 흉기에 부상하기도 했다. 실종신고를 단순 가출로 판단해 범인 검거에 애를 먹었던 김길태 사건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한편,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날 이주호 2차관 주재로 회의를 열어 휴교일 및 방과후학교 등 돌봄 사각지대에 놓이는 저학년 학생 보호대책을 세우기로 하는 등 뒤늦게 범죄예방조치 마련에 나섰다.
강희락 경찰청장도 영등포서를 방문해 "성범죄자가 활보하고 다닐 수 없도록 우범자를 철저히 관리하고 학교주변 안전대책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