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떠오르는 유로貨 기축통화론 "아직은…"

비유로권서 금융시장 주도권 잡고있어 '역부족'
유럽 각국 이해관계 달라 정치적 통합도 쉽잖아
달러-유로 '복점 기축통화체제'등 대안으로 부상



유럽 공동통화인 유로화가 지난 1999년 1월에 등장했을 때 워싱턴의 싱크탱크 국제경제연구소(IIE)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달러는 1차 대전이후 영국 파운드화로부터 세계 주도권을 뺏은 이래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경쟁자를 만났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 중에서 달러를 유로로 대체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1,000억~3,000억 달러가 각국 중앙은행 금고에서 나와 유로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은 유로가 출범 첫해에 빗나갔다. 초기에 유로가 달러에 대해 약세를 보였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의 비상금에서 달러 유출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유로가 출범한지 8년이 지난 지금, 달러화 약세가 5년째 지속되면서 전세계 투자자들이 달러표시 자산을 매각하고, 각국 중앙은행이 보유외환 가운데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유로 비중을 늘리고 있다. 버그스텐 소장의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서만 달러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 10% 이상 떨어져 주요통화 대비 사상 최저수준으로 하락했다. 따라서 달러의 안정된 가치 저장수단 등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위상에 크게 흠집이 났다. 이른바 '팍스 달러리움(Pax Dollarium)의 종말', 달러의 패권시대가 끝났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신뢰에 손상을 입고 그 역할을 못하게 됐고, 따라서 유로화를 그 대안으로 쓰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유로화는 아직까지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주장은 유럽의 이코노미스트들이 주장하는 바다. 우선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비유로권의 앵글로색슨계가 잡고 있다는 사실이 유로를 세계 기축통화로서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 블룸버그의 칼럼니스트 마이클 세싯은 "뉴욕과 경쟁해는 런던 금융시장이 유로화권에 들어와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ECB 본부가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유로화를 사용하지만 달러화를 사용하는 세계금융의 중심지 미국 뉴욕이나 영국 런던 금융시장의 경쟁력과 규모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유로존 각국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달라 정치적 통합이 요원하다는 것도 큰 약점이다. 유럽중앙은행(ECB)가 있음에도 불구, 기축통화로서의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유로권 전체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심각한 경기침체가 발생하면 일부 회원국이 자국의 경기 부양을 위해 유로존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유럽 각국의 경제상황이 각기 다르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로를 기축통화로 할 때 각국마다 무역적자를 내고 싶어하는 욕구를 누를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로화가 기축통화가 되면 유로존 역시 미국처럼 극심한 경상수지 적자 및 재정 적자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축통화가 되면 통화팽창 정책은 필연적인데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미국처럼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 재정적자를 메우는 것도 한계가 있다. 홀거 슈미딩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은 인구와 경제체력 측면에서 유럽보다 강점을 갖고 있다"며 "단기적인 달러약세 추세가 끝나면 유로의 달러 대체 논의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 유로존 국가들도 유로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달갑게 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지나친 유로 강세가 유로존의 수출 경쟁력을 해칠 것을 우려하고 때문이다. 유럽의 싱크탱크인 유럽개혁중심의 사이먼 틸포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인들은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만일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유로존에 윈윈 시나리오가 결코 아니다"고 지적했다. 셋째, 통화가치가 절상되는 화폐가 반드시 기축화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5년 플라자 협정 이후 10년간 달러가 하락하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가 급등했지만, 엔화와 마르크화가 기축통화로서 달러를 대체하지 못했다. 최근 달러화 약세로 달러 자산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걸프지역 산유국들이 2010년까지 달러 페그제를 유지하되, 그후 단일통화를 논의키로 한 것도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기능을 인정한 셈이다. 따라서 달러화의 위상 추락에도 불구, 유로화 기축통화론은 당분간 현실화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대신 과도적 단계로서 달러-유로 복점(duopoly) 기축통화체제 등의 의견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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