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지표를 바라보는 시장의 눈이 달라지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로 보면 당연히 수출이 잘 되면 기업수익이 늘어나고 증시도 좋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증시는 `수출`보다는 오히려 `가계 씀씀이`에 더 민감하다.
이상재 현대증권 경제조사팀장은 17일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수출은 주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며 “그러나 최근 수출과 민간 소비 가운데 소비가 경기와 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 경제와 증시의 체질이 바뀐 셈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들이 무역수지나 수출증가율 같은 수치보다는 소비지표의 변화와 움직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투자 타이밍을 잡을 것을 권하고 있다.
삼성증권이 외환위기 이후 소비(도소매 판매 증감율)와 수출(수출 증감율)의 주가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소비와 주가의 상관계수(1 기준)는 0.87인 반면 수출과 주가의 상관계수는 0.55에 그쳤다.
대한투자신탁증권 경제분석팀의 분석 결과, 1991~2000년까지 0.61에 달했던 수출ㆍ주가 상관계수는 2001년 이후 0.26으로 크게 낮아졌다.
소재용 연구원은 “지난해 4월 이후 수출이 본격적인 증가세로 반전하고 연간 6.3%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오히려 이때부터 내리막을 걷는 등 수출과 주가의 상관성이 약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출보다는 소비의 주가 민감도가 커진 가장 중요한 원인은 최근 소비 경기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삼성증권 오현석 연구원은 “소비는 투자나 수출에 비해 경기 변동성이 미미하고 경기 진폭을 완충하는 성격이 강했지만, 외환위기 이후 소비 변동성이 수출 변동성을 크게 웃돌며 오히려 경기 진폭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
외환위기 당시 가처분 소득 감소로 소비가 급속히 위축됐으나 2000년 이후 금리 하향 안정 추세로 소비 주체들이 저축대신 소비로 눈을 돌리면서 급팽창했고, 최근에는 세계 경기 둔화로 다시 급냉하고 있다.
내수 경기가 불과 몇 달 사이에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패턴을 보이면서 주가도 냉ㆍ온탕을 오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다 `부양`과 `긴축`을 오가는 정부의 경기 정책도 소비 변동성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건설 경기 부양 및 주택 담보대출 증가는 부동산가격의 거품을 초래했고, 신용카드 확대 정책은 외상 소비를 부추기며 또다른 후유증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소비는 언제 회복되고 앞으로 증시에 어떻게 반영될까. 삼성증권은 “소비저점=경기저점=주가저점 이라는 관계가 성립한다”며 “소비저점과 경기저점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증시가 반등한다고 해서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것은 위험이 높다”며 “신용불량ㆍ가계 대출ㆍ카드 연체 등의 문제가 해결되고 소비가 회복되는 시점은 빨리 잡아야 3분기 초반에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대투증권도 “주가와 상관성이 높은 국내 소비 지표는 3분기에 가서야 단계적 개선이 나타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