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부터 20일 새벽에 걸쳐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두 차례의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동맹국인 미국에 대해 최대한의 후방지원을 하겠다는 정부의 입장 공표와 테러 저지를 위한 주요8개국(G8)의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위한 것.
성명 발표에 수 시간 앞선 회견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은 미국 지원을 위해 최대한의 협력을 해 나가겠다"며 자위대를 통해 군사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의 법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군사적인 보복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보인 적극적인 태도에 대해 국내에서도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일부 제기됐을 정도다.
미국의 테러 사태는 강건너 불이 아니라 일본 자국의 문제라는 것이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그만큼 일본은 10년 전 걸프전에서 입은 국제 위상의 타격을 뇌리에서 지우지 못하고있다. 막대한 지원금을 내놓고도 군사상의 지원에 나서지 않은 일본은 당시 미국 등 연방군으로부터 위험부담을 회피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10년 전의 오명을 씻지 않으면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설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이즈미 정부가 무리수를 두는 이유이다. 법 개정 등을 위한 국내 여론 조정 등 골칫거리는 일단 뒤로 미루더라도 미국측에 동맹국으로서 위상을 굳혀야 한다는 초조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자위대가 미군의 군사보복을 위해 의료ㆍ운송ㆍ보급 등 후방지원에 나설 것이며 이를 위해 필요할 경우 기존 자위대법을 개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정보수집을 위해 자위대 해외 파견 ▦자위대의 주요 시설 및 미군시설 경비 강화 등 총 7항목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야당을 비롯한 국내 일부 여론은 정부 대응을 경계하고 있다. 분쟁을 이유로 한 무력 행동을 막고 있는 일본 헌법에 대한 해석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헌의 소지가 있는 중대 결정이 일부 여당 인사들에 의해 순식간에 이뤄진 것도 문제이지만, 이번 사건 이후 일본 정부가 점차 군사력을 강화, 그동안 지켜 온 헌법의 평화 원칙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도쿄=신경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