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까지 마친 철도노선 설계가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해 논란이 되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추진되던 원주~강릉 복선전철 공사 중 횡성~둔내 구간이 당초 터널 방식에서 지난 2011년 말 지상구간으로 바뀐 게 단초다. 경제성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라 "주변 경관을 보기 힘들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적이 변경이유라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원래 대로 돌아왔으니 대통령 말 한마디에 2년을 허송세월한 셈이다.
공사를 맡은 한국철도시설관리공단 측은 원래 경제성 있는 터널 방식으로 진행하려 했지만 접근성과 안전, 방재 문제 등으로 바꾸게 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올해 다시 원위치로 돌아온 것도 경제성과 지역 민원을 포함한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것이라 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변경사유였던 안전과 방재 문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노선만 약간 바뀌었을 뿐 이전과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
문제가 불거지자 공단과 국토교통부는 2017년 말까지 꼭 정상 개통하겠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 자칫 공기를 맞추려고 서두르다 보면 편법이 동원돼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번 꼬인 실타래를 풀기란 이처럼 어렵다.
사태를 여기까지 몰고 간 것은 '예스(yes)'만 남발하는 공기업과 정부부처의 복지부동이다. 그 뒤에는 사업에 대한 평가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더 중요시하는 무소신ㆍ무책임이 자리잡고 있다.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서둘러 설계를 다시 한 공단이나 2년 동안 이를 방치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뒤늦게 문제 삼은 국토부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 인프라 사업을 시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효율성이다. 수조ㆍ수십조 원을 투자하면서 타당성 조사를 하고 사업설명회와 공청회를 거치는 것도 엄정하고 정밀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다. 정권의 변화나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과 사견은 여기에 설 자리가 없다. 잘못된 것에 '노(no)'라고 말할 줄 아는 공공기관과 관료가 나와야 하는 이유다. 책임경영ㆍ책임행정은 선택이 아닌 존재이유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