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부품 좋아하다 대형사고 부른다 중국産부품 버젓이 '순정품'부착 유통 소비자 4명중 3명 "가짜와 구별 못해"
입력 2004.10.05 15:47:03수정
2004.10.05 15:47:03
[순정품써야 車 10년 탄다] 범람하는 가짜…생명을 노린다
값싼 부품 좋아하다 대형사고 부른다중국産부품 버젓이 '순정품'부착 유통 소비자 4명중 3명 "가짜와 구별 못해"
가짜와 구별 어떻게
현대차와 기아차의 순정품(사진위)과 르노삼성차 순정품 홀로그램
서울 성동구에 사는 정봉일(37)씨는 최근 2년도 안된 싼타페 엔진을 전부 들어냈다. 동네카센터에서 불량한 엔진오일필터를 사용한 게 원인이었다. 단골로 다니는 동네 카센터를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본 것.
자동차회사에서만 20년간 ‘기름밥’을 먹었다는 이유로 그간 차 전문가를 자처해온 서재천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 전무도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서 전무는 “일 때문에 방문한 지방에서 급하게 찾은 카센터에 맡긴 차에 가짜부품들이 수두룩하게 사용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강남 집 근처 현대자동차 지정정비공장에서 확인한 후 아차했다”며 “자동차 관련기관 임원도 당하니 일반인이야…”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지만, 정씨나 서 전무는 그나마 다행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카센터들이 순정부품을 쓰지 않고, 편법으로 유통되거나 소형중소업체들이 만든 조잡한 부품을 사용해 일어나는 대형사고가 갈수록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전국에 있는 카센터는 3만2,000개가 넘는다. 이중 상당수가 심각한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가짜부품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는 일부 정비업체의 경우 차량에 붙은 번호판의 등록지역을 확인해 가짜부품 사용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들도 돌고 있다. 예컨대 강남구 등록번호인 ‘서울 52’ 차량번호를 단 운전자는 강북이나 지방 카센터를 이용하면 십중팔구 가짜부품이 사용될 확률이 높다는 것.
◇조잡한 중국산까지 떠돈다=
가짜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돌고 있다. 가짜는 크게 ▦자동차부품업체가 자동차업체에 공식적으로 납품(OEM부품)한 후 여분을 시중에 내다파는 부품 ▦영세업체가 이를 조잡하게 모조한 모방품 ▦중고차에서 빼낸 재생품 등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중국산(産)까지 합류하고 있다. 얼마전에도 중국산 부품을 수입한 뒤 조작한 순정품 마크를 부착해 팔던 일당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차 정비시장에서 이처럼 가짜부품이 범람하는 원인은 일단 카센터 정비사와 운전자간 심각한 ‘정보 비대칭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차 부품정보에 무지한 소비자보다 기술과 정보력에서 우위에 있는 정비사들이 정보의 비대칭현상을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차 정비용 부품시장에서 공급자와 수요자의 정보격차는 병원에서 의사와 환자 수준이다.” (김종훈 한국소비자보호원 공산품팀장).
“선진국의 경우 자가정비(DIYㆍDo It Yourself) 문화가 발달했지만, 우리 운전자는 새차 사서 팔 때까지 보닛 한번 제 손으로 열어보지 않는게 태반이다.”(김유종 현대모비스 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일부 정비사들은 이런 사회의 틈새를 파고 들며 가짜를 권하고, 가짜를 써놓?순정품이라고 속여 비싼 값을 받아낸다.
가짜 부품에 관한 우리 운전자들의 인식과 행동수준은 한 민간기관 조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능률협회가 작년 운전자 1,200명을 대상으로 ‘차 부품에 대한 소비자 인지 및 실태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91.8%가 순정품의 우수성과 안전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26.3%만이 순정품 판별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정비사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가짜 부품을 쓸 수 있는 환경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운전자들의 경계심은 턱없이 약하다. 차량 정비시 순정부품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는 운전자는 52%였으나, 순정부품 교체여부를 직접 확인하는 경우는 28.8%에 그쳤다.
◇동네 단골카센터도 조심해야=
능률협회 조사에서 운전자 81.7%가 단골 정비업체를 갖고 있다고 했고, 이중 58.8%가 주요 단골업소로 동네 카센터를 꼽았다. 그러나 자동차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이나 차회사가 일정기준에 도달한 업체를 지정한 ‘지정점’을 이용하거나, 그렇지 못한 카센터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순정품 사용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성동구 정봉일씨는 “단골 동네카센터에 순정품을 써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결국 속였다”며 황당해 했다.
그렇다면 일부 카센터가 단골손님까지 속여가며 순정품을 외면하고 가짜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큰 마진폭이 유혹의 시작이다.
“유사품 혹은 가짜는 싼 제작단가로 조잡하게 만들어져 자동차회사가 정한 정식판매경로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카센터 공급가격도 순정품에 비해 싸다. 높은 차익에 대한 유혹을 카센터 주인이 거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소비자보호원 김 팀장의 진단이다.
정비업자체가 치열한 경쟁에 노출돼 있는 현실도 카센터가 순정품보다 비품을 선호토록 강제한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전국에 등록된 카센터 숫자만 3만2,240개소. 전국 차량 등록대수가 1,460만대라는 점을 감안할 때 1개 카센터당 평균 450대 꼴이다.
게다가 현대와 기아, GM대우, 르노삼성, 쌍용차 등 차회사들이 모두 신차보증수리기간을 크게 늘렸고, 직영정비업체는 물론 각 지역의 대표적인 정비업체들과 특약형태로 지정정비공장을 꼼꼼히 구축하면서 이들의 정비기회는 더 줄고 있다.
한 카센터 사장은 “광에서 인심나는데 지금 동네 카센터업체는 이런 환경에 장기간 경기침체까지 겹쳐 광이 텅 비어 있는 상태”고 고충을 털어놨다. 가짜 차부품을 쓰고 있는 운전자는 이런 정비업체간 생존경쟁의 희생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가짜 차부품 시장에도 수요와 공급법칙이 철저하게 통용된다.
수요가 많은 부품, 즉 운전사들이 많이 찾는 품목일수록 가짜가 많다. 따라서 자주 교체하는 부품일수록 순정품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대우자동차 김기호 차장은 “차 순정부품은 기분대로 골라쓰는 기호품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 것이 내차에서 가짜를 추방하고 나와 가족, 타인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co.kr
서울경제신문ㆍ스포츠한국 공동기획
입력시간 : 2004-10-05 1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