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아파트를 시공한 후 분양하는 `선시공 후분양제`의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많아져 건설업체 부도와 함께 아파트 공급물량이 줄어들면 집값은 오히려 상승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선분양제`는 주택수급의 불균형을 가져오고 투기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부실공사와 하자로 인해 수많은 아파트 입주자들을 각종 분쟁으로 내몰고 있다. 선분양에 따른 분쟁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보니 최근에는 아파트 입주자들이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공동체)를 결성해 아파트의 문제점들을 미리 점검해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심지어 사업주체의 안티(anti) 사이트를 개설해 시공상의 하자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선분양제 하에서는 선납대금을 내고 아파트를 분양 받은 입주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주자 사전점검제도` 같은 형식적인 절차를 통해 아파트의 부실공사와 하자를 철저히 찾아내 이를 보완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 뿐이다.
따라서 입주자들은 설계도면에 설치하기로 돼 있는 갖가지 설비들과 장치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설계도면대로 설치했더라도 기능상ㆍ안전상의 문제는 없는지, 상ㆍ하수도 시설에는 문제가 없는지, 방수ㆍ방음ㆍ방열시설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주차장이나 담장 같은 부대시설이나 어린이 놀이터 같은 복리시설이 설계도면이나 시방서에 맞게 건축됐는지, 분양계약서나 분양공고에 명시된 아파트 면적보다 실제 면적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등을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입주자들이 부실공사나 하자를 찾아 내더라도 이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계약조건이 사업주체에게 유리하게 작성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준공허가가 난 이후에 아파트 하자를 지적하게 되면 하자보수보증금 밖에 기대할 게 없다. 그러나 하자보수보증금으로 받은 수 있는 피해보상금액은 총 공사비에서 토지가격을 뺀 금액의 3%에 불과하다. 결국 하자로 인한 피해가 클 경우에는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아파트 하자를 둘러싼 분쟁이 빈번한 이유는 뭘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건설회사들이 일단 선분양을 한 후 실제 공사 때는 이윤극대화를 위해 설계도면과 다르게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선분양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아파트 공사 도중 시공사가 부도나는 경우 입주자는 입주지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물적ㆍ정신적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또 입주자는 시공된 아파트를 확인하지 못한 채 분양을 하다 보니 분양계약 때 자신이 입주할 집의 일조권이나 조망권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고, 분양광고만을 믿지 말고 분양계약서의 내용을 세심히 살피고 계약을 체결하는 세심함을 보여야 분쟁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선분양제는 분쟁의 원인이 되는 하자나 부실공사의 가능성이 크고, 또 이로 인해 생기는 많은 위험부담을 시공사가 아닌 입주자에게 떠 넘기는 등 상당히 문제가 있는 제도다.
선분양제도는 이외에도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선진국들은 60년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아파트를 짓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선분양 제도로 인해 20년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부실한 아파트만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부실한 아파트는 재건축을 부추기고 재건축은 다시 부동산 투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투기판이 된 재건축시장은 조합원간의 분쟁, 시공사와의 분쟁 등 수많은 분쟁을 발생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모든 분쟁의 뿌리에 선분양제가 있는 것이다. 소비자가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 모를 사더라도 유통기한이나 제조원 등을 유심히 살피고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몇 억원 짜리 아파트를 분양 받으면서 별다른 대책 없이 결정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소비자의 권리를 찾아주고 분쟁을 줄이며 튼튼한 아파트를 만들어 사회적 낭비를 줄일 수 있는 후분양제의 도입은 당연한 것이다. 건설업계가 두려워하는 문제점은 후분양제를 도입하면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등 새로운 금융기법이나 제도를 통해 풀어가야 할 숙제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후분양제를 막는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
<채형석(대종법무법인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