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현지시간) 거대 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가 강타한 칠레 북부 지역에 2일에도 진도 7.8의 강도 높은 지진과 규모 5~6을 넘나드는 여진이 이어졌다. 전날 역대 두번째로 강한 진도 8.2의 지진이 난 지 하루 만에 또다시 강진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고조됐지만 전날 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 외에 이날까지 별다른 추가 피해는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이틀 연속으로 발생한 대지진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는 없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는 칠레의 지진 대처방안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지진·화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환태평양조산대(불의 고리)' 위에 올라앉은 칠레는 1960년대까지 큰 지진이 일어날 때마다 막대한 인명·재산피해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제는 초기 경보에서 구호에 이르는 방재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피해를 현저히 줄였음은 물론 명실공히 모범 방재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외신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이번 지진피해 최소화의 일등공신은 칠레가 시행 중인 엄격한 내진설계 기준이다. NBC방송은 2일 미국 지질조사국(USGS) 소속 랜디 발드윈 연구원의 말을 인용해 "칠레에서 더 이상의 큰 피해는 없을 것 같다"면서 "이 나라의 내진설계법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의 내진설계 기준법은 세계 지진 관측 사상 최고기록인 진도 9.5의 초거대지진이 발생해 수천명의 사상자가 나왔던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살바도르 아옌데 당시 칠레 대통령이 주도해 1972년 통과시킨 이 법은 건물 기둥보다 들보(기둥 위에 얹혀 건물의 내부공간을 구성)의 파괴를 먼저 유도해 진동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건물의 내구력을 끌어올리는 '강기둥-약보' 시스템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된 후 지금까지 칠레에선 1,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 사례가 없다.
유엔 산하 '자연재해경감을 위한 국제전략기구(UNISDR)'는 2010년 1월과 2월에 각각 발생했던 아이티와 칠레 대지진을 비교하며 "두 지진 간의 현격한 피해 차는 칠레의 내진설계 기준 덕분"이라고 결론 내리기도 했다. 당시 아이티는 진도 7.0의 지진에도 사망·부상자가 각 25만명에 달하고 수도 포르토프랭스 건물의 70%가 붕괴됐다. 반면 진도 8.8의 강진이 강타한 칠레에서는 550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데 그쳤다.
칠레 정부가 지속적으로 보강해온 통신 시스템 및 급수설비 등 재난 대비 인프라 역시 방재체계의 강점으로 꼽힌다. 정부는 재난발생시 민간의 통신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 대비해 실시간 재난경보 및 지시사항을 끊김 없이 전파할 수 있는 통신망 구축에 공을 들여왔다. 2011년에는 휴대폰에서 TV에 이르는 모든 방송통신 기기에 동시다발적으로 정보를 전송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아이티 대지진 당시 물 공급 단절로 피해가 커졌던 경우를 교훈 삼아 보다 유연한 재질의 배관을 지진 집중 지역에 설치한 것도 한 예다.
이 밖에 세계 각국의 지진 대비 협조체계가 원활히 작동하는 것도 칠레의 효율적 대처의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의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PTWC)와 알래스카지진·쓰나미경보센터(WCATWC) 등의 주도로 태평양 일대 모든 나라들은 지진·쓰나미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다.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 정보가 일본에 도달하는 데는 1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이 같은 국제 공조가 형성된 것도 1960년 칠레 대지진이 남긴 유산이다.
다만 이번 칠레 지진의 피해가 적었던 것이 단순히 방재 시스템의 위력 덕분이라고 강조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많다. 진앙 지점이 인구밀집지역과 떨어진 정도, 지진·쓰나미의 진행방향에 따라 피해규모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