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 6일 램 이매뉴얼(49) 일리노이 주 하원의원을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내정했다. 이에 대해 미 주간지 타임은 최신호를 통해 이매뉴얼 비서실장 내정자가 말버릇이 상스러운 데다 고집이 세지만, 저돌적이고 엄청나게 똑똑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오바마가 '말만 많고 행동은 없다'는 공화당의 비판을 단숨에 불식시키려는 카드로 이매뉴얼 비서실장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것이다. 이매뉴얼의 독설은 미 정계에 악명이 높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관으로 활동할 당시 힐러리에게조차 독설을 서슴지 않아 해고될 뻔했을 정도다. 낸시 펠로시 미 연방 하원의장도 "램이 악담을 퍼부을 때마다 25센트를 저금한다면 경기부양책에 쓸 자금을 금방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워싱턴 정가에는 그가 자신의 심기를 불편케 한 정적에게 썩은 물고기를 보냈다는 소문까지 돌았고, 뉴욕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 소문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매뉴얼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는 결국 능력이 뛰어나서다. 고집대로 좌충우돌하는 기질 탓에 민주당 내부에조차 그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지만, 강인한 의지력과 열정, 재빠른 머리회전만큼은 누구나 인정한다. '람보(Rahmbo)'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총을 쏘지는 않지만 무섭게 사람들을 다그친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고함을 지르며 끊임없이 명령하고 "다음 일은 뭐지?"라고 끊임없이 묻는 사람'이다. 이매뉴얼은 행정ㆍ입법부와 시장을 두루 거쳐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 본부에서 재정담당을 맡은 인연으로 1993년에서 1998년까지 백악관 정책보좌관을 지냈다. 이매뉴얼은 클린턴의 선거운동 당시 민주당 경선 라이벌이었던 폴 송거스 후보가 "이매뉴얼의 자금조달 능력 때문에 선거자금 부족으로 패했다"고 털어놓을 만큼 선거자금 모금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 클린턴 정부 정책보좌관을 지낼 당시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민주당을 설득해 협정 체결에 기여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평화협정 체결의 기반을 닦기도 했다. 이후 3년간 투자은행인 바세르스타인 페렐라(2000년 드레스드너 은행에 합병)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금융에 관한 지식도, 경험도 일천한 상태에서 기업 간 인수합병(M&A) 컨설팅 등을 통해 회사에 1,620만 달러의 이익을 보태줄 만큼 두각을 나타냈다. 2003년 정계로 복귀,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4선까지 성공했다. 월가 인맥 덕분에 2008년 헤지펀드 등으로부터 가장 기부금을 많이 받은 하원의원으로 기록됐다. 이매뉴얼은 유대인 가정에서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 램(Rham)은 히브리 어로 '높다' 또는 '고상하다'는 뜻을, 성 이매뉴얼(Emanuel)은 '신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아버지 벤저민 이매뉴얼은 이스라엘 건국 운동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어머니인 마샤는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자라서 TV에 나올 만한 인물이 돼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첫째 형인 에제키엘은 저명한 종양학자이며, 남동생인 애리는 헐리웃 유명 기획사의 대표로 미국의 인기 TV드라마인 '앙투라지'의 주인공인 애리 골드의 실존모델이다. 램은 고등학교 때 식당에서 일하다가 고기 절단기에 손가락을 잘렸지만, 졸업파티에 가려고 치료를 미루다가 상처에 병균이 옮아 거의 죽을 뻔했다. 지금 그의 가운뎃손가락은 절반만 남아 있다. 이매뉴얼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발레를 배우면서 발레리노가 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결국 새라 로렌스 대학에 진학했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스라엘 군대에서 잠시 복무하기도 했다. 현재 부인인 에이미 룰과는 1990년 소개팅으로 만나 4년 후 결혼했다. 자카리아, 일라나, 리아 등 세 자녀를 뒀다. 독서, 수영 및 철인 3종경기가 '취미'다. 이매뉴얼은 오바마보다는 보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전략담당인 존 피어리는 "이매뉴얼은 오바마가 좌파적인 입장을 너무 드러낼 경우 민주당에는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바마 의원과 힐러리 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맞설 당시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매뉴얼에게 클린턴 전 대통령과의 관계 탓에 힐러리 편에 설 것을 주문했지만, 결국 오바마를 지원했다. 이매뉴얼은 이제 오바마 호(號)의 기관장으로서 어떻게 금융위기를 헤쳐나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의 신중함과 이매뉴얼의 공격적인 추진력이 합쳐져 놀라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두 정치인의 개인적인 친분도 상당한 만큼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또 오바마가 자신의 선거캠프에서 활약한 신인보다 백악관 경험이 있는 인물을 요직에 앉힘으로써 백악관에 단단히 닻을 내리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격적인 스타일이나 잦은 설화 탓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벌써부터 "워싱턴의 정치문화를 끌어올리겠다는 말은 허언(虛言)이었느냐"는 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국책 모기지업체인 프레디맥에서 부실문제가 막 불거지기 시작할 당시인 2000년~2001년 사이 이매뉴얼이 이 회사에서 이사를 지낸 사실도 논란을 빚고 있다. '엄청나게 똑똑한(smart as hell)' 이매뉴얼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