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일본 버블 붕괴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사전 경고해 국제 금융가에서 ‘닥터 둠’으로 통하는 마크 파버가 투자자금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미있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른바 ‘투자의 접시’다.
파버는 자금시장을 커다란 접시에 비유한다. 이 접시는 대나무 받침대 위에 위태롭게 걸려 있고 여기에는 끊임없이 물(자금)이 공급된다. 이 접시는 코끼리로 비유되는 투자자들이 흔들어대는 대로 움직인다.
코끼리떼는 경제학자나 펀드매니저 등 몰이꾼들이 명령하는 대로 대나무 받침대를 이리저리 밀어붙인다. 몰이꾼들의 새로운 지시가 내려질 때마다 접시의 물은 다른 방향, 다른 시장으로 흘러간다. 접시가 기울어져 물이 한곳으로 흘러들기 시작하면 이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돈이 흘러들어간 시장의 가격은 무섭게 오르게 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투자 접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부동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리면서 정부는 지금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 강남 등의 아파트 가격이 치솟자 정부는 “헌법을 바꾸는 정도로 힘을 들이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 제도를 만들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겉으로 드러난 한 가지 현상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데 있다.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당장 부동산 쪽에 물이 흘러들지 않도록 둑 쌓는 데만 ‘올인’하고 있다. 접시의 물을 다른 생산적인 분야로 돌리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장기 적립식 투자펀드에 대해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용방안에서는 그나마 보류됐다.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것은 세계적인 저금리 상황 속에서 투자자들이 돈을 굴릴 데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 예금금리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연 5~6% 정도의 상품만 있으면 돈은 몰리게 마련이다. 선박펀드가 나오기가 무섭게 매진되는 것이 좋은 예다.
정부는 부동산 대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자본시장과 같이 좀더 생산적인 곳으로 돈이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