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제도 개혁안] 기업·금융사 자금, 해외에서 자유롭게 굴린다

대외채권 회수의무(현행 3년) 사실상 폐지, 자본거래 사전신고 의무도 폐지
외환 송금액 1~2만 달러로 상향, 사전신고 대상은 10만 달러 이상으로 추진


앞으로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굴리기 훨씬 쉬워질 전망이다. 50만 달러를 초과하는 대외채권을 3년 이내 국내에 회수하도록 한 대외채권 회수 의무가 사실상 폐지되기 때문이다. 이 의무는 기업·금융사들이 자산관리를 하는 데 자율성을 제약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꼽혀왔다.

하루에 2,000달러 이상을 해외로 보내거나 2만 달러 이상의 외국 돈을 찾을 때도 은행에 증빙서류를 낼 필요가 없어진다. 외환 거래할 때 강제되는 각종 신고의무가 사라지고 기업의 신속한 투자를 막는 장애물로 지적되는 자본거래 사전신고제는 원칙적으로 폐지된다.

정부는 29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외환제도 개혁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대외 채권 회수 의무를 폐지하는 대신 급격한 자본유출 등 외화 유동성 경직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필요할 경우 회수를 의무화할 수 있는 안전 조치의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해외직접투자 및 해외부동산 취득은 사전신고 대상을 일정 금액 이상의 대규모 투자로 축소한다. 사후관리를 위해 필요한 보고 서류도 대폭 줄이고 일정기준 미만의 소액투자에는 사후관리 의무도 면제한다.

정부는 또 외환거래 때의 증빙서류 제출 의무 등 외환거래 과정에서 불편함을 주는 은행 단계의 확인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하루에 2,000 달러 이상, 1년에 5만 달러 이상 해외로 송금하거나 하루 2만 달러 이상을 송금받을 때 은행에 제출토록 하는 증빙서류가 사라진다. 상계·제3자 지급 등 실제 외환 이동이 없는 비전형적 거래는 신고가 필요없는 금액 상한이 미화 기준으로 현행 2,000 달러에서 1만∼2만 달러 정도로 높아진다.

10만 달러 이상 거래가 아니면 사전신고할 필요도 없다. 건당 2,000 달러 이상의 자본거래를 할 때 금융당국에 사전신고해야 했던 규제는 없어지고 ‘원칙적 자유·예외적 사전신고’ 제도로 바뀐다. 앞으로 정부는 대규모 거래로 모니터링이 필요한 경우, 외화유동성을 높일 가능성이 큰 경우 등 사전신고가 필요한 거래 유형을 정하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풀어 신속한 자본거래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핀테크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도 이뤄진다. 정부는 증권·보험·자산운용사 등 비은행금융사의 외국환업무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소액외환이체업’을 도입하기로 했다. 은행의 고유 업무로 묶여있던 외환송금을 카카오톡, 라인 등 모바일앱을 이용해 간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로 사용되는 전자지급 결제대행업(PG) 사업자에 대한 외국환 업무도 허용된다. ‘역(逆) 직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이다. PG사가 외국환 업무를 보면 중국인들이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 중국 최대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알리 페이를 이용해 손쉽게 결제할 수 있다.

외환거래 자율성이 대폭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불법거래를 막기 위한 모니터링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은행·금융감독원·국세청·관세청·FIU 등 관련 기관의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외환 전산망에 집중된 거래정보를 분석해 의심 가는 거래를 자동으로 걸러내는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외화 유동성 관련 건전성 장치를 전면 재정비하고 외환제도 관련 제도를 위반했을 때 처벌수위와 과태료를 대폭 상향 조정키로 했다.

정부는 관계기관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외국환법령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올해 안으로 외국환관리법 등 관련 법률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외환 거래시의 증빙서류 제출 폐지 등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국회에서 관련 법령이 통과되는 대로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하고 시행령이나 규정 변경으로 가능한 대책은 올해부터 바로 시행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수십년간 이어져온 외환거래 관련 규제가 한번에 패키지로 개선된다”며 “개인과 기업의 자율성이 크게 개선되고, 금융권의 글로벌 경쟁력이 올라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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