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은행권 자본확충펀드에 10조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앞서 채권시장안정펀드에 5조원을 지원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은의 채안펀드 지원은 은행권의 채권을 담보로 잡고 평상시처럼 공개시장 조작으로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고 자본확충펀드 지원은 ‘전시에나 있을 법한’ 민간기업에 직접 자금을 대주는 방식이다. 즉 자산유동화법상 한은이 펀드에 직접 돈을 댈 수 없기 때문에 중간에 자금중개기관(SPC)을 설립해 이곳을 통해 우회적으로 펀드에 지원하는 것이다. SPC는 성격상 명백한 영리기업이다.
현재 한은법상(80조) 한은이 영리기업에 돈을 줄 수 있는 길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라고 판단할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은이 은행권이 아닌 기업과 자금거래를 하는 것은 금융위기 상황에만 꺼낼 수 있는 비상조치인 것이다. 한은이 비상한 조치 차원에서 영리기업에 특별융자(특융)를 해준 적은 지난 1997년 12월이 마지막이다. 당시 외환위기로 콜 시장이 마비돼 증권사들이 지급결제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한은은 증권금융과 신용관리기금에 3조원을 대출해 증권사와 종금사를 우회 지원한 바 있다.
결국 한은이 SPC에 10조원을 대출해준다는 것은 금통위가 현 상황을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라고 공식 선언한다는 이야기와 다름없다. 이는 11일 금통위에서 이성태 총재가 언급한 ‘현재 상황은 비상사태 경계선’ 수위를 넘어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총재는 당시 “금융통화위원들이 비상사태 수단까지 동원해야 할 것인가, 전통적인 수단에 머물 것인가 판단해야 할 어려운 상황에 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물론 금통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지만 현재로서는 앞으로의 은행권을 핵으로 한 신용위축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컨틴전시플랜에 따라 은행권 자본확충펀드 지원은 물론 또 다른 비상조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금통위에서 비상사태라고 판단한다면 한은 역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실시하는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 매입 등의 초강력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가능성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