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재벌가(家) 딸, 유명 외국계 컨설팅업체 대표 부인 등 부유층 여성들이 때 아닌 ‘홍콩 펀드’ 괴담에 시달리고 있다. 홍콩 주식이 급락해 대규모 환매 손실을 봐서가 아니다. 믿었던 지인이 ‘홍콩 펀드 투자’ 운운하며 거액의 돈을 빌려간 뒤 갚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송을 내자니 신분이 노출될 수 있어 남 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23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이 돈을 빌려준 지인은 국내 중견 제지업체 오너의 며느리인 A씨이다. 1년 전 피해 여성들은 A씨가 급전이 필요할 때마다 거액을 선뜻 빌려줬다. 중견기업 오너의 며느리인데다 자녀들이 다니는 외국인학교 학부모들이어서 서로 잘 알고 지낸 터라 돈을 받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것이다.
실제 A씨는 초반에는 매달 이자를 꼬박꼬박 지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이들에게 돈을 빌릴 때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월 15%의 고리를 약속했다. B씨 역시 수 차례에 걸쳐 총 9억원을 빌려주면서 월 15%의 이자를 받기로 약정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홍콩 펀드에 투자하기로 돼 있어 수익이 많이 날 것 같으므로 월 15%의 이자 지급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안심 시켰다.
그러나 월 15%의 고리약정은 곧바로 A씨의 발목을 잡았다. A씨는 B씨에게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억원이 넘는 돈을 갚았지만, 여전히 12억원 정도가 이자 등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에 B씨는 잔금을 갚으라며 A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대여금 반환소송을 내고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은 다음주께 극적 타결을 앞두고 있지만 문제는 이 같은 피해 여성이 더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 중에는 국내 4대 재벌과 중견 코스닥기업 오너의 딸, 유명 외국계 컨설팅업체 대표 부인 등 부유층 여성들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관련자는 “B씨의 경우 원금을 돌려받았지만 아직 원금과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여럿 있다”며 “한 피해자는 A씨를 상대로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자녀들과 미국으로 가 행적을 감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 여성들은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어 혼자만의 속앓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