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서 드러난 '두산비리' 실태

주식회사를 '사금고'로 활용…용처 의혹 여전

검찰이 석 달 넘게 파헤친 두산그룹 비자금 수사 결과를 보면 재계 10위의 기업이 얼마나 허술하게 일반 주주들의 재산을 관리했는지 알 수 있다.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과 박용만 전 부회장은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위장 계열사를 동원해 해마다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었고, 유상증자 자금을 대출받는 과정에서 계열사에 139여억 원의 이자 부담을 떠넘긴 사실이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두산그룹 총수 일가가 보유한 회사 지분은 올 7월 말 현재 두산산업개발 7.52%,㈜두산 18.22%, 두산중공업 0.02%에 불과했음에도 회사 재산을 마치 사금고처럼 활용한 부분도 파악됐다. ◇총수 지시에 공금이 주머니 돈으로 =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은 제동 장치 없는오너 경영이 갖고 있는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검찰에 따르면 박용오, 박용성 전 회장은 1995년 11월께 당시 두산건설 대표이사 정모씨가 두산건설에 지급하기로 돼 있던 29억 원의 변상금을 회사에 입금하지않고 대주주 일가의 공동 자금으로 관리하면서 가족 생활비로 썼다. 이미 전모가 드러난 유상 증자 대출 이자 대납 부분도 무소불위의 권한이 있는사주들이 다른 마음을 먹으면 회사에 치명적인 손해를 끼칠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1999년 11월~12월 두산건설 유상증자 과정에서 ㈜두산 경영진은 대주주 일가가대출을 받아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이자는 두산건설이 비자금을 만들어 납부하겠다는의견을 박용오, 용성, 용만 형제에게 보고했던 것. 박용오 전 회장 등 형제들은 두산건설 경영진에게 보고 내용대로 따르도록 지시했고, 두산건설은 협력업체에 외주 공사비를 과다 지급한 후 차액을 돌려받는 방법으로 230억원 가량의 비자금을 만들어 이자를 대신 내주었다. 비자금 중 51억원은 박용오 전 회장에게 건네져 대주주 일가의 생활비로 사용된것으로 밝혀졌다. 동현엔지니어링이 2000년부터 올 3월까지 협력업체와 허위로 공사계약을 하고대금을 송금한 뒤 돌려받는 방법으로 조성한 19억1천만원의 비자금은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 인프라코어 상무에게 전달돼 가족 자금으로 사용됐다. 위장계열사인 세계물류도 운송 대금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1996년부터 올 8월까지 47억8천500만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박진원 상무에게 건넸다. ◇비자금 만들며 대규모 분식회계 = 현 두산산업개발의 전신인 두산건설은 저가수주와 과대한 금융 비용 때문에 1995년께부터 재무구조가 부실해져 관급공사 등을수주하기 어렵게 되자 그 해연도 회계부터 매출 과대 계상으로 당기순이익이 발생한것 처럼 분식회계를 했다. 주력 계열사 중 한 곳이 부실 경영 때문에 주주들을 속이는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었는데도 총수 일가는 따로 비자금을 만들어 생활비로 쓴 셈이다. 두산산업개발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올 8월8일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천797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공시했다. 검찰은 그동안 수사를 통해 2002년부터 올 3월까지 공사 현장의 공사 진행률을조작해 매출 금액을 과대 계상하는 방법으로 이익 잉여금 2천838억원을 과다 계상한사실을 추가로 포착했다. 두산산업개발은 회계법인 감사를 피하려고 가짜 공사원가 전표를 제출했다. 막대한 규모의 분식회계에는 박용성, 용어, 용만 형제가 모두 관여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총수 일가 중 6남인 박용욱 넵스 대표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부인의 급여 명목으로 2억7천여만원을 횡령하고 1999년부터 5년 동안 협력업체와 허위거래하는 수법으로 37억원의 비자금을 만들어 사찰에 기부하거나 생활비로 사용했다. ◇진정ㆍ고발 내용 줄줄이 무혐의 = 박용오 전 회장이 진정한 비리 의혹 중 미국 위스콘신주 소재 바이오 기술개발업체 뉴트라팍을 이용한 총수 일가의 800억원대외화도피 의혹은 자금이 외부로 유출된 흔적이 없어 무혐의 처리됐다. 검찰은 "자금 흐름을 살펴본 결과 대주주와 계열사들이 2000년부터 5년동안 6천260만달러를 투자했고, 투자금 대부분은 연구개발비, 컨설팅, 일반 관리비로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박용성 전 회장의 비자금 통로로 의심받던 생맥주 체인점 ㈜태맥의 비자금 조성의혹이나 ㈜두산중공업이 엔세이퍼를 부당 인수한 사실도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또 참여연대가 배임 혐의로 총수 일가와 계열사 경영진을 무더기 고발한 고려산업개발 주가조작 의혹을 비롯해 두산포장ㆍ삼화왕관의 두산산업개발 신주인수권 부당 인수 의혹, 이 회사들의 두산그룹 4개 신협에 대한 출자, 두산신협 등 4개 신협의 계열사 주식 부당 매입 등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 ◇남는 의혹들 = 검찰은 총수 일가가 1995년 이후 조성한 300억원대의 비자금을공동 관리하면서 생활비로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기업 사주 일가가 해마다 30억원 안팎의 비자금을 만들어생활비로 썼다는 설명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검찰은 "재벌 오너가 기업을 사유화해 회사 자금을 개인 돈으로 사용하고, 계열사 경영자들은 회사 이익보다 총수 일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비윤리적 행태를 보였다"며 전근대적 가족 경영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검찰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비자금 상당수가 현금으로 유통됐기 때문에 구체적인 용처를 끝까지 추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혀 실제로 일부 비자금의 용처는 미궁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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