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 위해 환율전쟁 선전포고

■ 아베 "엔달러 환율 90엔은 돼야"
한국 등 주변 신흥국 겨냥
BOJ 통해 엔화공급 늘릴 듯


아베 신조 차기 일본 총리의 목표환율 발언은 사실상 한국 등 신흥국들에 대한 환율전쟁 선전포고와 마찬가지다. 선진국 지도자가 환율 발언을 삼가는 것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문율이며 더구나 목표환율 제시는 전무후무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은행이 엔화대출을 늘리며 엔ㆍ달러 환율이 상승세(엔화가치 하락)를 타는 상황에서 아베 차기 총리의 발언은 외환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24일 일본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오후4시 현재 0.1~0.2엔 오른 84.36엔을 기록했다.

아베 차기 총리의 환율 발언은 인위적 엔화약세를 통해서라도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을 올려야 한다는 요구가 내부적으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달러당 90엔 정도는 돼야 일본 기업들이 이윤을 볼 수준이 될 것으로 자민당은 보고 있다. 아베 차기 총리는 일본은행의 역할에 대해서도 분명히 언급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찍어내서라도 디플레이션을 일으켜야 한다는 논리다.

아베 차기 총리는 직접적인 환율시장 개입보다 일본은행이 엔화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만성적 디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엔화강세 흐름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일단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내며 자국경제를 떠받치고 수출을 늘리고 있다"며 "일본은행이 이에 대항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ㆍ유럽연합(EU)ㆍ영국 등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국 등 주변 신흥국을 겨냥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내년에는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환율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다카시마 오사무 씨티뱅크 전략가는 "통화정책 완화는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엔화약세가 동반될 때는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아베 차기 총리와 자민당의 엔화가치 하락기조에 대해 한국 등 주변국들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칫 일본의 엔화가치 하락정책이 일본 기업들의 수익성을 회복시켜 역으로 경쟁국 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도 최근 "경기부양을 위한 마땅한 방법이 없는 만큼 통화가치 하락을 새로운 정책수단으로 택하는 국가들이 많아질 것"이라며 "내년에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대항해 신흥국이 잇따라 외환시장에 개입하며 글로벌 환율전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차기 총리가 무조건적 엔화가치 하락보다 엔화강세 흐름을 어느 정도 바로잡은 후 목표범위 내에서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엔화가치 하락이 장기화할 경우 자칫 석유ㆍ석탄 등 수입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오히려 일본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레디아그리콜의 사이토 유지 외환거래장은 "새로 들어서는 아베 정부는 무조건적 엔화가치 하락보다 일본 기업의 수익성을 만족시키는 수준을 추구할 것"이라며 "달러당 85~90엔대의 환율은 일본의 수출업자 및 수업업자, 한국과 미국 등 주요 교역국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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