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나 채찍질하려 할리우드 문 두드렸죠

영화 '라스트 스탠드' 김지운 감독
제작비 400억 규모 액션영화… 마약왕·국경 보안관 결투 다뤄
초반 시스템 적응 힘들었지만 외국 진출 매뉴얼 이제 터득
첫 영화 만들때 같은 행복 느껴

아놀드 슈왈제네거(왼쪽)와 김지운 감독이 20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영화 '라스트 스탠드(감독 김지운)' 기자회견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스포츠한국=김지곤기자

"할리우드 진출은 제 인생 전체 시간표에서 꼭 필요했던 부분이었죠. 한국에서 감독으로 인정 받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행복하진 않았습니다. 정체된 기분도 들었죠. 편안했지만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유를 찾아야 했죠.'그럼 나를 최악의 상태로 되돌려 다시 시작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할리우드로 갔습니다."

김지운 감독(49·사진)은 할리우드 문을 처음 두드린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악마를 보았다'등 매번 장르의 통념을 비틀어 그만의 영화 세계를 추구했던 사람, 박찬욱과 더불어 한국 대표 영화감독으로 손꼽히는 김지운 감독이 첫'할리우드'영화를 내놓았다. 박 감독과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에서 첫 영화를 찍었지만, 김 감독의 작품'라스트 스탠드'(21일 개봉)가 먼저 국내 관객을 찾는다. 영화는 시속 450km에 달하는 슈퍼카를 타고 멕시코 국경을 향해 질주하는 마약왕과 작은 국경 마을 보안관의 결투를 다뤘다.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주연인 보안관을 맡았다. 제작비 300∼400억 규모로 미국에서는 중급 규모의 액션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저명한 영화전문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은"초반은 여유 있고 느긋한 즐거움을 선사한 뒤 후반에 이르는 클라이막스에서 생생한 총격전과 자동차 추격전을 보여준다"고 평하기도 했다.

카 액션 못지 않은 이 영화의 백미는 힘이 넘치는 마약왕 조직과 한가로운 시골마을 보안관·오합지졸 부하 ·괴짜 마을 사람들의 대비에서 빚어지는 특유의 유머에 있다. 특히 10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변화된 모습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지난 1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쾌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순수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며 "시대의 액션 아이콘 아놀드가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 이를테면 영원히 무적일 것 같던 사람이 싸우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헉헉대는 모습 혹은 돋보기 안경을 쓰고 사체를 들여다 보는 장면 등을 통해 색다른 부분에서 유머를 강화 시켜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 일이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김 감독 스스로도 "영화 중·후반부를 넘어가면서 무게 중심이 오롯이 감독에게 넘어왔고 그제야 내 스타일이 반영됐다"말할 정도로 촬영 초반에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감독 결정이 곧 영화에 반영되는 구조라면 할리우드에서는 설득해야 할 사람들이 정말 많았죠. 제작자와 주연 배우, 최종적으로 스튜디오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국에는 있지만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서는 없는 롤(역할)도 있었죠.'현장 편집 기사'인데, 영화의 리듬감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의견을 표했죠. 함께 동행한 한국 편집기사가 빠른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편집을 끝내고 현장에서 바로 함께 모니터 하는 것을 보고는 후에는 할리우드 배우와 제작자들이 혀를 내두르더라고요."(웃음)

물론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이 마냥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만 여겨지지는 않았다. 김 감독은"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하는 우리와 달리 할리우드는 자신의 영역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 등 협업의 인식 자체가 다르다"며 "외려 이 같은 부분이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확고한 프로의식을 낳는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내디딘 할리우드에서 김 감독은 힘들었던 만큼 얻은 열매가 꽤나 많은 듯 보였다. 그는"영화의 흥행 여부와 관계없이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전 과정을 거쳤고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외국 진출 매뉴얼을 이제 터득하게 된 거죠. 다음 작품에서는 이 매뉴얼에 나의 느낌을 어떻게 많이 녹이느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다시 겸손함으로 영화를 처음 만들 때의 행복을 제대로 느끼고 있다는 김 감독은 국내에서 단편 영화 2편과 장편 1편을 작업한 뒤 다시 할리우드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밀도 높은 액션 영화, 보디가드와 보디가드 의뢰인 사이에서 생기는 스릴러 서스펜스, SF 영화 등 세 편이 할리우드에서 논의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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