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사태 악화일로] "안전담보 못한다"… 메이저 석유기업 발빼고 원유시장 출렁

브렌트유 가격변동성 최근 한달간 11% 넘어서
이라크정부 "ISIL 공습해달라" 美에 공식 요청


이라크에서 메이저 석유 기업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지난주 봉기를 일으킨 이슬람 급진 수니파 반군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이라크 최대 규모의 정유 공장을 공격하는 등 사태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는 판단에서다. 상대적으로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는 원유 시장도 최근 거래량 및 변동성이 급격히 높아지는 등 이라크 리스크에 본격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영국 석유 기업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의 밥 더들리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이라크 남부 루마일라 유전 지역에 있는 비필수 인력에 대해 철수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인 엑손모빌 또한 웨스트쿠르나 유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非) 이라크인 근로자들을 철수시켰다고 기업 관계자는 전했다.

당초 이라크 정부 및 석유 기업은 ISIL의 이번 봉기가 이라크 내 원유 생산량의 90%를 차지하는 남부가 아닌 북부 지역에서 발원했다는 점 등을 들어 원유 생산에 별다른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실제 지난주 이후 이라크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와중에도 하루당 300만배럴 규모의 생산량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18일 ISIL이 수도 바그다드의 북쪽 250㎞에 위치한 살라헤딘주 바이지의 한 정유 공장을 습격했다는 소식에도 런던ICE선물시장에서 거래되는 북해산 브렌트유 8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0.7% 오른 114.20달러선에서 거래가가 형성되는 등 "비교적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그러나 이 같은 표면적 모습과는 달리 원유 시장은 최근 변동성 및 거래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는 등 이라크 사태 리스크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 30일 동안의 가격 변화를 측정하는 브렌트유의 '역사적 변동성' 지표는 사태 발생 전인 지난 6일에는 8.6%에 불과했으나 최근 11%를 넘어섰다. 한 달 동안의 브렌트유 가격 변화가 그만큼 심해졌다는 의미다.

특히 12일 ICE 시장에서의 브렌트유 선물 거래량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100만 계약을 돌파했고 같은 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의 브렌트유 거래량도 11만2,446계약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L)의 프란시스코 블랜치 원자재·파생 리서치 담당 대표는 "미래의 생산량 변화 가능성 때문에 2015년 이후 인도분 가격은 현물가 대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전날 ISIL의 정유시설 습격과 관련해 공장 근로자 및 목격자, 이라크 군당국 등은 치열한 교전 끝에 ISIL을 격퇴했고 그 과정에서 반군 40명이 사살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유 시설 방어를 담당하는 수비대 사령관은 "시설 내 공장 몇 군데에서는 여전히 교전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주요 시설이 파괴됐다"고 말했다고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YT)는 보도했다. 이 밖에 이라크 정부군은 ISIL가 점령했던 시리아 인접 지역 일부를 수복하는 등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군·시아파 민병대와 반군 간 교전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18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라크 정부는 양국 간 안보협정에 따라 테러단체 ISIL을 공습해줄 것을 미국에 공식 요청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ISIL 진군을 막을 수 있는 타깃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공습을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유일하게 배제한 건 지상군"이라며 "(이를 제외한) 다른 선택지들은 고려하고 있다"고 해 공습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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