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통상시스템 제기능하려면

美무역대표부 같은 전문기구 시급총체적 난국에 빠진 통상시스템을 어떻게 재구축할까. 세가지 대안이 있다. 첫째 조직 재정비. 하드웨어 측면에서 정부 부처를 개편하자는 것이다. 두번째는 통상 소프트웨어 마련이다. 제도를 고치지 않아도 운영의 묘를 살리고 정부와 민간의 실무형 전문가 활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세번째는 사회전반의 구조조정 가속화다. 특히 농업부문에 대한 냉철한 인식과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차적인 관심사는 통상조직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의 문제다. 우리나라의 통상조정기능은 크게 5가지의 틀을 거쳐왔다. 해외경제기술 협력위원회(76년), 해외사업조정위원회(77년), 해외협력위원회(83년), 대외경제조정위원회(86년), 통상산업부(94년), 외교통상본부(98년)가 그 것. 불과 25년 사이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 본 셈이다. 때문에 조직을 바꾼다 해도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두가지 선택이 가능할 뿐이다. ◇무역대표부(KTR) 설치안 급부상 하나는 각 부처에 통상교섭권을 이양하는 외무부가 지원하는 방안. 부처간 이견 다툼이 워낙 심해 나온 방안이지만 설득력은 다소 약한 편이다. 정보화ㆍ국제화로 업무가 복잡해져 한 개 부처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는 분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두번째 방안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비슷한 한국 무역대표부(KTR)을 설치하는 것. 국민의 정부에서도 수차례 논의됐으나 '작은 정부' 차원에서 보류됐던 사안이다. 장관급 부처를 신설하되 대통령 직속기구로 독립시켜 힘을 실어주자는 견해가 주류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조직개편보다 내용이 중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 최낙균 무역투자정책실장은 "부처 신설, 조직개편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외부인사를 과감히 채용하거나 실무자들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인사제도 등을 고치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보완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최실장은 "몇 개 법령의 보완 등만 거친다면 현재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통상교섭에 나설 때 마다 각 부처가 신경을 곤두세우는 훈령권과 대표임명권 등을 각부처에 위임토록 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 공무원 인사평가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적어도 통상에 관한한 타부처에 대한 협조와 통상 최종안에 대한 기여도 등이 인사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우수 인력의 확보도 가능하다. 인사 평가에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부처 의견만 지배적으로 반영되는 현재 구도는 부처간 협조를 가로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성역을 깨야 한다 마늘문제의 밑바닥에는 '농업문제는 성역'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한중 마늘협상의 결과는 국제경제학의 기본인 비교우위설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꾸만 문제가 꼬이는 것은 농업개방을 금기시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개방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장 발등의 불인 DDA(도하개발아젠다)에서도 농업개방은 가장 중요한 의제다. 통상압력을 극복하고 세계경제의 블록화에 대응하기 위해 추진중인 자유무역협정 등도 농업문제에 걸려 있다. 농어촌 문제 해결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구조조정, 경쟁력 강화 노력이 없는 한 통상 마찰은 물론 성장동력까지 약화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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