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느닷없이 북미 고위급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은 16일 국방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미국 본토의 평화와 안전에 관심이 있다면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자"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 평화체제 전환, 미국의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를 의제로 꼽았다.
남북회담이 무산된 지 5일 만에 북미 대화를 제의한 북한의 의도가 뭔지는 불분명하다. 대화 제의 자체만 놓고 보면 긴장국면 해소에는 긍정적 신호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처음으로 비핵화를 김일성ㆍ김정일의 유훈으로 천명한 것도 전향적인 제스처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북한이 남북회담은 터무니없는 '격'을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무산시키고 미국에 조건 없이 대화를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통미봉남의 꼼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남북회담 무산 책임을 전가하고 우리의 입지를 흔들어 한미 갈등을 획책하려는 기만전술인 동시에 제재 전선의 균열을 꾀하려는 술책이라는 분석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북한이 이번 담화에서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을 천명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북한은 2011~2012년 농축우라늄(HEU)을 지렛대 삼아 세 차례에 걸친 북미대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3차 핵실험에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장거리 로켓까지 개발했으니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핵 보유국 지위를 이용해 국제적 제재를 피하고 경제적 대가까지 얻고자 하는 술책이 용납될 수 없음을 자명하다.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핵 보유국 지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더구나 미국은 6자회담과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
남북관계 진전 없는 북미대화는 실효성도 없거니와 진정성조차 의문스럽다. 남한을 배제한 북핵 문제 해결이나 북미관계 진전은 있을 수 없다. 북한의 상투적 수법에 휘말려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