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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사상 처음으로 사퇴했다 유임된 정홍원(71·사진) 국무총리가 마침내 세 번째 짐을 싸며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의 낙마로 발탁된 정 총리는 무난하게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박근혜 정부 초대 총리로 2013년 2월26일 취임했다. 책임 총리에 미흡하다는 꼬리표가 그를 따라다녔지만 대통령 중심제에서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 속에 청와대와 별 마찰 없이 국정 2인자로 역할을 수행했다.
정 총리는 그러다 지난해 4월16일 날벼락 같은 세월호 참사를 맞아 희생양의 숙명을 부여안고 11일 후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수습 후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했고 그는 서울과 진도 팽목항을 수없이 오갔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로 지명됐다는 소식에 정 총리는 '이제 다리 뻗고 자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첫 짐을 쌌다. 그러나 안 지명자에 이어 문창극 지명자 사퇴까지, 정 총리의 말을 빌리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연거푸 발생해 두 번째에는 이사까지 마쳤던 짐을 다시 들여놔야 했다. 그는 논란의 유임 후 기자들과 만나 "혼돈 상태에서 제가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공백의 장기화는 막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박 대통령의 유임 요청을 고사 끝에 수용한 배경을 털어놨다.
시한부 총리라는 딱지를 불식시키듯 정 총리는 이후 부정부패 척결에 앞장서며 국정과 민생 챙기기에 한층 열의를 보였지만 걸핏하면 교체론에 시달려야 하는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적절한 시점에 언제든 그만두겠다"고 사의를 밝혀둔 정 총리는 22일 신임 총리 지명 소식을 미리 통보 받고 23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예정된 오찬 행사를 공개에서 비공개로 미리 바꿨다. 스포트라이트를 신임 총리 내정자에게 돌리는 배려였다. 정 총리는 국무회의와 국가정책조정회의 등은 계속 챙기며 국정에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완구 총리 내정자가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을 순조롭게 통과해도 다음달 하순이나 취임이 가능해 정 총리는 2년 정도의 임기를 끝으로 마침내 내각 수장의 직을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