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禹錫(삼성경제연구소 소장)어느 신문을 보다가 작가 이문열씨의 「변경」 12권이 완간되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금 기대에 차 있다. 그동안 「변경」은 신문연재소설로 또 단행본으로 틈틈이 읽었는데 아예 12권을 몽땅 사놓고 날을 받아 다시 한번 읽을 작정이다. 「변경」같은 대하소설은 휴가갔을때 머리맡에 모두 쌓아 놓고 한권한권 읽어야 안심이 된다. 좋은 책이 중도에 끊어졌을 때의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박경리(朴景利)씨의 「토지」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한권씩 읽었기 때문에 처음의 감동을 되살리기가 어려웠다. 조정래(趙廷來)씨의 「태백산맥」은 10권을 쌓아놓고 밤잠을 줄여가며 읽고 큰 흥분을 맛보았다. 홍명희(洪命憙)의 「임꺽정(林巨正)」은 옛날 어릴적 집에 굴러다니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후 완간본을 다시 읽고 새삼 놀랐다. 지금부터 60여년 전에 이렇게 풍부한 어휘와 문장을 구사할 수 있었다니 하고 정말 감탄했다.
이병주(李炳注)씨의 「지리산(智異山)」이나 「남노당(南勞黨)」도 흥미있게 읽었는데 「변경」보다는 덜 와 닿았다. 「남노당」의 주인공들은 우리보다 약간 앞선 세대여서 동세대적 공감이 덜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문열씨의 「변경」세대는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한다. 6.25 동란, 기아, 가난, 4.19와 5.16때의 혼란, 가족이란 마지막 보루, 살벌한 이념 대결 등등.
「변경」의 시대배경은 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로 나의 젊은 시절과 겹쳐 있다. 그 20여년을 작가 이문열씨는 탄탄한 문장과 빈틈없는 구성, 또 대단한 끈기로 재생해 놓아 마치 빛바랜 옛 활동사진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은 몽땅 사서 읽는 편인데 세월에 따라 작가가 바뀐다. 그러나 이문열씨는 아직 바뀌지 않았다. 초기 작품인 「새하곡」 「금시조」 「들소」같은 단편은 그것대로, 「영웅시대」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같은 본격소설은 그것대로, 「황제를 위하여」 「미로일지」 「오디세이아 서울」같은 약간 해학기가 있는 작품은 그것대로 좋다. 얼마전 「선택」이란 옛날 배경의 작품 때문에 다소 곤욕을 치른 모양인데 나는 그 작품도 흥미롭게 읽었다. 그걸 갖고 시비를 벌이기 보다 「선택」보다 더 좋은 작품을 내면 될 것을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작품이 좋기 때문에 나는 이문열씨가 다른 일에 시간 뺏기지 말고 오래 건강하게 살아 좋은 작품을 계속 내주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