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 지난 1981년부터 출간 2년 내의 신간에 대해서는 5% 이내의 할인만 허용하고 지난해에는 온라인서점의 무료배송까지 금지시킬 정도로 강력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가 이처럼 강경할 수 있는 것은 지역 중소서점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 덕분이다. 프랑스의 동네서점은 단순히 책이라는 '제품'을 파는 소매점이 아니라 지역 인문·독서모임의 중심으로 기능한다. 서점 주인도 도서관 책임사서 수준의 지식을 갖고 토론을 이끄는 사회자가 된다. 1980년대 도서정가제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서점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베스트셀러나 참고서 위주인 우리와 달리 지역사회의 문화와 함께 호흡하며 지지를 얻어온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문화융성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그간 문화적으로 소외돼온 지역 문화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지 도서관·공연장·박물관 하나하나를 늘리는 것보다 지역 문화 생태계가 선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주민이 필요로 하고 향유하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참여하는 문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추진돼온 공공기관·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본격화하는 것도 좋은 기회다. 아직 주말가족이 많지만 오랜 기간 감소해온 지역인구와 일자리·소득 증가로 문화수요 역시 늘어나고 있다. 또 지역사회와의 동화를 위해 기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역행사나 문화탐방 프로그램을 추진하며 긍정적인 효과가 가시화하고 있는 즈음이다.
◇문화행사 지원 확대…지역 서점을 '문화사랑방'으로=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수년 전부터 지역 서점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에 예산을 배정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인 예산 규모다. 전년 대비 2배가량 늘어났다지만 지난해 지역 서점 문화행사 지원에 책정된 것은 고작 1억5,000만원, 그것도 25개 서점에 지원되니 각각 300만~600만원 수준이다. 출판과 문학·도서관을 담당하는 부서가 출판인쇄산업과·예술정책과·도서관정책기획과로 갈라져 큰 방향의 정책을 수립하기 어려운 것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연구원은 예산 문제에서 더 나아가 강연자 섭외가 어려운 지역 서점 입장을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강연에 나설 인문·문학 강연자 풀을 조성하고 나아가 지역 문화인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화·연계공연으로 문예회관 차별화를=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설립된 문화예술회관은 214개, 하지만 평균 공연일수는 97일 정도다. 개중에는 공연일수가 700일이 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열흘 미만인 곳이 22곳, 심지어 한 건의 공연조차 하지 못한 곳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이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지방자치제도 시행에 따른 정치적 포퓰리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제대로 된 수요조사나 체계화된 경영계획 없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문예회관을 이끌 수장이나 전문가가 부족해 공연 기획은 물론 유치에 애를 먹고 2~3년마다 자리를 옮기는 공무원의 특성상 자체 전문가를 키우지도 못했다.
대안은 차별화와 연계공연 확대로 모아진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충무아트홀과 강동아트센터가 각각 뮤지컬과 무용으로 차별화에 성공했고 서울 내 중소 문예회관이 세종문화회관에 올려졌던 작품으로 연계공연을 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사립 박물관·미술관 체계적 관리 필요=국내 국공립 박물관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포함해 전국 12곳, 미술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전국 40여곳 정도다. 그 빈틈을 메우는 것이 사립 박물관·미술관이다.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공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운영 사정이 괜찮지만 사립시설은 당장 실질적인 보완과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은 각각 400여곳, 150여곳에 달하지만 잘 알려진 간송미술관·호암미술관·호림박물관 같은 곳을 빼면 90% 이상이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다. 예술 부문에 대한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현실에서 단지 소유자의 재력과 입장권만으로는 운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외국처럼 시설 신축 단계부터 후원금이 밀려드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게다가 취미 차원에서 개인이 모은 소장품이 대부분이다 보니 소장품과 컬렉션의 경쟁력이 높지 않고 전문 학예인력도 부족해 보존·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기부문화가 없다 보니 미술관에 볼 만한 작품이 없는 게 현실이고 이는 다시 관람객이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많은 전문가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박물관·미술관 검증체계가 절실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