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들은 은퇴한 관료들에게 너무나도 포근한 안식처였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막강한 힘들 가진 권력집단에 저축은행 경영진이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영업이 정지되기까지 이들이 한 역할은 거의 없었다. 특히 일부 고위 관료 출신 사외이사들은 수년 전부터 저축은행 검사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예상된다. 18일 토마토ㆍ제일 등 7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된 가운데 이들 저축은행에 전 감사원장이나 국세청장,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고위 관리 등이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로 재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은 고액급여만 챙기며 사실상 저축은행의 불법과 부실에는 눈감으며 금융당국에 압력을 가한 정황도 포착돼 비판 여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저축은행의 경영과 대주주를 감시해야 할 감사도 금융감독원 출신이 5명이나 됐다. 금감원의 저축은행 감독 부실과 연관성을 맺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게 금융권의 지적이다. 서울경제신문이 19일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의 최근 감사 및 분기보고서를 통해 사외이사와 감사, 현황 등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저축은행 업계 3위로 상장사인 제일저축은행은 이종남 전 감사원장이 최근까지 사외이사로 있다 저축은행 사태가 확산되자 사퇴했다. 김창섭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 감사원 출신의 이국희씨도 제일저축은행의 사외이사다. 제일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지난해 6월 말 8.22%라고 밝혔으나 경영진단 결과 -8.81%로 나타났다. 제일의 감사는 김상화 전 금감원 팀장이 맡아왔다. 제일의 계열사인 제일2저축은행은 손영래 전 국세청장과 소일섭 전 재경부 경제홍보기획단장이 사외이사로 활동했지만 경영진을 제대로 견제하지는 못했다. 제일2의 감사는 안정석 전 금감원 수석검사역으로 1년 전 9%대라고 밝힌 BIS 비율이 실제는 마이너스 상태였다. 단일 저축은행으로 국내 2위인 토마토는 조성익 전 재정경제부 관리관(1급)이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또 감사는 금감원 수석검사역 출신인 신창현씨가 5년이나 장기복무했지만 경영진의 불법·부실 경영을 오히려 방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토마토는 최근 1년 사이 순자산 감소액이 5,000억원을 넘어 이번에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 중에서도 부실로 판명된 자산 규모가 가장 컸다. 프라임저축은행은 군 장교 출신 인사가 사외이사를 맡아 업무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프라임 측은 "투자 자산이 수조원에 이르는 군인공제회 임원 경력을 높이사 영입한 것"이라고 전했다. 프라임의 감사도 금감원 부국장 출신인 최정식씨가 맡아오다 저축은행 사태가 커지자 지난 3월 말 사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경영진단 결과 BIS 비율이 -51.1%를 기록해 부실의 대명사로 주홍글씨가 새겨진 에이스저축은행의 감사 역시 금감원 수석검사역 출신이었다. 더욱이 일부 고위 관료 출신의 사외이사들은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직 금감원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들이 수년 전부터 저축은행 검사 때마다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검사팀이 곤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의 한 관계자는 "명망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저축은행 사외이사로 영입돼 경영진을 감시하기보다는 한통속이 돼 부실을 키우고 로비하는 역할을 한 측면이 있다" 며 "금감원 출신 상당수 감사는 이미 검찰조사에서 금감원 관계자와 뇌물을 주고받는 창구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난 만큼 향후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