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는 지금 함정에 빠져 있다. 경기침체로 청년실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주력산업의 중국 이전으로 기업투자 또한 감소하고 있다.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저성장 기조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확산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면서 경제 또한 큰 타격을 받을 것이 우려된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해야 지금의 함정에서 벗어나 재도약할 수 있을까.
한국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제도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성장이론을 주장하는 뉴욕대의 폴 로머 교수나 하버드대의 대니 로드릭 교수는 모두 성장이 정체된 신흥시장국이 재도약하자면 제도개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 여건은 그동안 크게 변했지만 제도는 과거의 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중국으로의 산업이전으로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고 소득격차 또한 늘어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맞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 소득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통한 계층 간 사다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높은 사교육비로 공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일자리 부족과 소득격차는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유통제도도 변해야 한다.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되면서 유통환경은 크게 변했다. 과거에는 비록 국내가격이 높아도 관세 때문에 국내에서 구매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소비자는 해외구매를 선택할 수 있다. 복잡하고 거래비용이 높은 지금의 유통제도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내수는 더욱 줄어들고 국부의 유출은 심화될 것이 우려된다.
연금제도와 복지제도 또한 신속히 확충돼야 한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노후소득은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근로자들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노후소득을 저축하기 위해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 경제는 고임금·저고용의 악순환 속으로 들어가 있다. 노후소득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연금제도나 복지제도를 확충하지 않고 고용구조만 개혁하는 것으로는 임금을 안정시킬 수 없다.
이번의 메르스 확산사태도 의료제도가 선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의료수준은 높지만 의료보험이나 간병인제도는 선진국보다 열등하다. 선진국과 같이 필요한 경우 1인용 병실에 대한 보험료 지급 문제나 간병인제도 등에 있어 제도의 미비가 질병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이다.
제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기존 제도에서 이익을 보던 집단들이 제도의 변화를 강력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발을 극복하고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제도를 그대로 적용한 특구를 설치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또한 이익집단 반발이 적은 제도의 혁신부터 먼저 시행하거나 혹은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전략적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고용·공공·교육, 그리고 금융 부문에서 4대 개혁은 제도가 우리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이라는 점에서 올바른 정책방향이다. 그리고 최근의 공무원 연금개혁 또한 비록 미흡하지만 점진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재도약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는 제도의 미비로 기업이 과도한 임금인상 부담을 지지 않도록 젊은 층부터 국민연금을 보완할 민간연금에 가입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이익집단이 많은 유통제도와 교육제도는 점진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하며 단기간에 개선이 가능한 의료보험제도와 간병인제도는 하루속히 선진국과 같이 바꾸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국 경제는 지금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