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적 경기조절론' 93년 재판우려
KDI "불가피하지만 구조조정만이 확실한 경기회복책"
최근 정부의 '제한적 경제조절론'은 사실상 경기부양책으로 지난 93년초 실시된'신경제 100일 계획'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즉 구조조정이 불충분한 가운데 진행되는 경기부양정책의 한계에 대한 경계다.
물론 100일 계획은 '선 경기부양, 후 구조조정'을 내걸었고 제한적 경기조절론은 '구조조정의 차질없는 마무리를 위한 제한적 의미에서의 경기부양'이라는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보다 필요한 시점에서 정책의 초점을 경기부양에 맞춤으로써 결과적으로 중장기적인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경제 100일 계획의 교훈
김영삼 정부 출범이후 시작된 '신경제 100일 계획'은 "수술(개혁)을 위해서는 선 체력보강(경기활성화)이 중요하다"는 논지에서 출발했다.
즉 단기적인 경제활성화를 위해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 조기집행, 생필품 가격관리 강화, 공무원 봉급동결, 대폭적인 규제완화, 중소기업 지원 확대 등을 내용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경제 100일 계획은 구조개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경기부양에 치중, 경제에 거품을 키우고 97년 환란의 씨앗을 뿌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경제성장률이 93년 5.5%에서 94년과 95년 각각 8.3%, 8.9%로 올라갔지만 93년 흑자이던 국제수지는 94년 적자로 반전, 적자규모가 94년 38억달러, 95년 85억달러, 96년 230억달러로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경기부양이 '반짝 경기'로 그친 이유는 80년대말 우리경제가 안고 있던 고임금, 고지가, 고금리의 고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구조조정 없이 경제의 양적 팽창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한적 경기조절론'
정부는 지난 4일 올 세출예산의 조기집행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제한적 경기조절책'을 발표했다. 재경부는 이 같은 정책이 구조조정을 미루는 '경기부양'은 아니며 "구조조정이 최선의 경기회복책이지만 경기가 지나치게 침체될 경우 구조조정에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주어진 예산총계 범위내에서 제한적 경기조절 정책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관된 구조조정에 정책우선순위 둬야(KDI)
KDI도 경기가 지나치게 급락하기 때문에 제한적 경기조절론의 불가피성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심에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KDI는 "현 경제의 위기는 기업과 금융의 불확실성 증대와 이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 소비위축에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이야 말로 확실한 경기회복책"이라고 주장한다.
KDI는 특히 부실징후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부도유예는 기업 구조조정 정책의 신뢰성을 저하시키고 있으므로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과감한 정리를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근 산업은행을 통한 정부의 대기업 회사채 인수방안에 대해 KDI는 부정적이다.
KDI 관계자는 "정부가 그동안 공적자금의 투명성, 책임성을 강조해 놓고 이제 와서 이를 우회해가면서 기업을 도와주는 셈"이라며 "이는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과도 배치될 뿐 아니라 사실상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점에서 투명성, 책임성도 명백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다른 분야도 어려움을 당하면 이번 사례가 계기가 돼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며 "재정의 규율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견해
급격한 경기둔화를 막기 위한 정부의 경기조절론에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일관되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부양과 구조조정은 별개"라는 입장을 밝혔다. 좌 원장은 "구조조정은 미시(micro) 측면이고 부양은 거시(macro) 차원"이라며 "부실기업 퇴출 등 구조조정을 철저히 해야 금융경색도 완화되면서 자금시장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양은 경제전반의 안정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며 "부양과 상충된다고 부실기업 퇴출을 주저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기업 회사채 지원정책에 대해 좌 원장은 "대안이 없다는 측면에서 불가피한 느낌도 있지만 정부가 직접 여신을 할당하는 방식대신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에 상업은행(commercial bank)기능을 줘 여신업무를 수행하면 부작용이 줄어들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금융연구원 정한영 박사는 "정부의 제한적 경기조절은 경기를 미조정하는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의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