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CD·반도체·전자 관련 제조설비를 제작하는 한국알박은 10년 전 한국에 야심차게 진출했지만 뜻밖의 난관에 부닥쳤다. 본사가 자랑하는 회사의 주력 장비인 스퍼터링 머신을 국산화하려 했지만 정작 이를 기술적으로 뒷받침할 부품 협력사가 국내에 없었던 것.
오랜 궁리 끝에 한국알박은 직접 기술을 이전해주는 대신 개발한 부품을 자사에 제공해줄 신뢰할만한 협력 회사를 직접 찾아 나섰다. 동반성장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대기업도 아닌 1차 협력사가 2·3차 협력사와 동반성장에 나선 것이다.
한국알박은 협력업체를 본사가 있는 일본으로 데려가 기술이전을 시켜주는 등 협력업체의 개발능력 향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자사 협력업체로 구성된 한국알박협의회 소속 기업인들과 한국알박 대표가 직접 소통하는 정기 모임도 열어 친목을 도모하고 상호 신뢰를 쌓았다. 하지만 갑을문화가 워낙 팽배했던 탓에 질문 시간이면 참석한 기업인들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서로 간에 남아있던 어색함과 낯설음은 백충렬 대표의 진정성 있는 태도로 점차 해소됐다. 백 대표는 대금결제 관행 등 현장에서 문제제기된 애로사항에 대한 해결을 직접 약속하며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 결과 보증증권 발행 관행이 철폐되고 전자어음 대신 한 달에 2번 현금결제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등 대대적인 개선이 이뤄졌다. 협력사가 자금난에 빠졌을 때 과감히 선지급하는 배려도 보여줬다.
정기적인 소통과 이를 통해 쌓은 상호 간의 신뢰는 한국알박이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한국 진출 초기 약 800억원이었던 매출은 10년이 지나며 2배 이상 뛰어 약 2,000억원에 이른다. 고용 인원 역시 130명 수준에서 360명으로 훌쩍 뛰었다.
한국알박 구매부 관계자는 “대표가 직접 구매담당 직원들을 데리고 미팅에 참여하며 결제관행 개선에 힘을 실어준 결과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현업부서 직원들도 주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며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협의회에 알박 직원들은 물론 협의회 소속 기업의 임직원들도 참여하다보니 구매부서 비리가 미리 예방되고 투명경영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10년간 거래관계를 이어온 상당수 협력사들 역시 크게 성장했다. 최애희 드리미 대표는 “30대 초반이었던 2003년에 창업을 한 뒤 1년 만에 알박 협의회에 가입하다보니 연배가 있는 동료 남성 대표들과 막상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며 “경영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드물었지만 압박 협의회를 통해 사람관리부터 제조원가 분석, 납품 단가 책정, 비용계산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은 것이 회사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자본금 1,000만원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현재 매출액이 100억원을 넘는다.
어느덧 설립 10주년이 된 한국알박협의회는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모임만 매년 4~6회에 이르고 체육대회도 개최하는 등 업계에서 동반성장의 원조다운 모범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보통 대기업이 주도하는 협력사 미팅이 평균 연 2회 남짓인 것이 현실이다.
특히 알박협의회는 단순한 소통의 공간을 넘어 경영혁신의 장으로 더욱 진화하고 있다. 한국알박은 최신 업계 트렌드를 소개하며 협력사들이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협력사들은 각 회사별 기술개선 사례를 공유하며 경영혁신을 장려하고, 원청 발주시 납기가 지나치게 빡빡할 경우 공동으로 납기 조정에도 나서 애로사항 해결을 적극 돕고 있다.
한국알박 관계자는 “예외적이긴 하지만 납품 과정에서 불량이 생기면 서로 정보를 교류할 정도로 서로 간의 믿음과 동반성장 의지가 확고하다”며 “최근 들어 업계가 갈수록 힘들어지며 가격경쟁력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시기인 만큼 협력사 간의 공동대응 확산에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