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눈 대신 귀와 마음으로 판결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씨 첫 공개재판
음성변환 이어폰·노트북 통해 재판기록 들으며 검토
참관인 "어색하긴 하지만 인상적"

시각장애인인 최영 판사가 11일 첫 재판에 앞서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이용해 기록을 검토하는 데 필요한 이어폰을 끼고 있다. /조영호기자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판사인 최영(32ㆍ연수원 41기ㆍ사진)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11일 첫 재판을 진행했다. 법원은 이날 약 10분여간 최 판사의 첫 재판을 언론에 공개했다.

오전10시. 최 판사를 비롯한 민사합의11부 판사들이 701호 법정에 들어섰다. 다른 판사의 팔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던 최 판사는 배석판사 자리에 앉는 순간 이어폰부터 챙겼다. 재판기록을 '들으며' 검토하기 위해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에게 이어폰은 그의 귀이자 곧 눈이다. 재판이 시작되자 최 판사는 바쁘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날 최 판사의 재판을 지켜본 참관인들은 "시각장애인 판사가 어색하기는 하지만 다른 판사들과 다름없이 재판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재판을 마친 최 판사는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판사라는 책임감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면서 "사법부에서 시각장애인을 판사로 임용한 것은 법원이 변화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 판사는 지난 2월 신임 법관 임명식을 마치고 서울북부지법에 첫 출근을 했다. 이 법원은 최 판사가 원활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수단을 마련했다. 판사실과 지원실, 건물 내외부 등에 점자유도블록을 설치하고 최 판사가 음성변환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글파일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판사 지원실을 만들었다.

이창열 북부지법 공보판사는 "최 판사는 음성기록파일을 두번 정도 들으면 내용을 거의 외울 정도로 업무 적응 속도가 빠르다"고 최 판사를 지켜본 소감을 말했다.

최 판사는 고교 3학년이었던 1998년 시력이 점점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고 지금은 1급 시각장애 상태다. 그는 다섯 차례의 도전 끝에 4년 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도 상위 40위권의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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