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조건 지나치다(사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경제정책 권고안은 가혹하리 만큼 강도가 높다. 우리 실정과 예상을 뛰어넘는 무리한 요구다.구제금융 제공의 이행조건 내용에는 성장률감소, 물가안정, 국제수지축소, 재정긴축, 세제·노동제도 개편, 금융과 산업구조조정 등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고 극약처방이 담겨 있다. 이대로라면 저성장, 고실업, 고물가, 고세금이 불가피한 고통의 시대를 맞지 않을 수 없다. 이왕 맞을 매라면 서둘러 맞는 게 좋을 수도 있다는 자조의 논리가 가능할지 모르나, 우리 현실을 외면한 채 IMF강요에 지나치게 양보함으로써 경제회생이 아니라 오히려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는 역작용이 우려된다. 물론 돈을 빌려주는 입장에서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조건중에는 우리 스스로 추진해야 할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 조건에 우리의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어야 무리없이, 또 부작용없이 실행할 수 있게 마련이다. IMF지원은 체면이나 자존심을 따질 수 없을 만큼 불가피한 것이나 조건협상을 너무 허겁지겁 서두르다가 감내하기 어려운 조건을 수용, 일을 그르치지 말아야 한다. 구제금융 요청소식에도 국내 주식 외환 자금시장의 불안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자금을 받아내야 할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실정과 파장을 설득, 반영해야 한다. 한국은 멕시코나 동남아 국가들과 다르다. 경제기반이 그들 나라보다 우월할 뿐 아니라 문화와 제도·관습도 다르다.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 높은 저축률을 갖고 있다. 똑같은 처방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체질에 맞는 조건이어야 한다. 경제상황을 보아가며 수시로 조건을 수정할 수 있는 길은 열어 놓아야 마땅하다. 세부조항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대목이다. 「금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IMF가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을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별로 심하지 않은 환자에게 불필요하게 쓴 약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총체적 불황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내다 보인다. 성장률을 3%로 축소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고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실업사태를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장률 6%시대에서도 실업대란으로 사회가 술렁이는 판이다. 3%성장때 발생할 혼란과 저항을 감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제를 더욱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게 할 것이다. 금융기관 구조조정은 우리에게도 거쳐야 할 과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인수합병이나 완급을 가리지 않는 폐쇄조치는 실물부문의 감당하기 어려운 희생이 따른다. 특히 우리는 은행이 망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구조조정소리만 가지고도 금융마비 상태를 빚고 멀쩡한 기업의 연쇄부도사태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실정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일률적으로 혹독한 조건을 적용할 일이 아니다. 세율인상은 실업공포와 기업도산속에서 국민적 경제회생 의욕을 꺾고 기업을 위축시킨다. 세수증대는 커녕 저항만 부르게 된다. 부가세율을 인상할 게 아니라 과표를 현실화하고 오히려 세율을 내리는 게 바른 방향이다. 재정긴축이나 부실채권 정리기금의 정부출자 확대가 잘못된 건 아니나 국민부담으로 귀착되고 무차별적인 국책사업의 투자축소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고비용 혁파가 더욱 늦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개방시기, 경상적자 축소대책도 꼼꼼히 짚어봐야 한다. IMF의 일방적이고 통상적인 처방이 경제의 목을 죄어 총체적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안팎의 우려에 대해 정부는 분명히 이해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번 이행조건의 실천은 다음 정권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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