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화가 김병기, 50년 작품인생 결산

『오래 살아있다는 이유 외에 회고전을 가질만한 이유가 내게는 없어 보인다. 회고전이 마지막 결산같은 것을 의미한다면 더욱 그렇다. 나의 작품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내게 있어 작품은 유동적이며, 과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만의 서울이 찬란하고 놀랍다.』재미 원로화가 김병기(金秉騏·84) 씨가 대규모 회고전을 20일부터 5월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02~3217-0233)에서 갖는다. 김씨는 50년 작품세계를 총결산하는 이번 전시에서 1960년대 미공개작 「유연견남산」을 비롯해 「꽃핀 능금나무」, 「북한산」 등 모두 75점에 이르는 대작들을 선보인다. 그는 『작가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가면서 성장한다』면서 『지금 나 자신은 어떤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자문하고는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김환기, 유영국과 더불어 한국화단에 서구 추상미술을 도입했던 제1세대 인물이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는 조선미술가동맹 서기장을 맡기도 했고, 1947년 월남해서는 국방부 종군화가단 부단장, 서울대 미대 교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분단시대를 무척 다채롭게 경험한 사람이다. 감투도 많았고 직함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작가는 일찌기 미국으로 건너갔다. 감투에 얽매이고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신화를 창조하기보다는 그저 한 사람의 보통사람으로 규정되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김병기씨의 작품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놀랄만큼 역동적이다. 비록 추상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우리 앞에 선보이는 작품에는 구상성이 매우 돋보인다. 날카로운 기세로 움직이는 꽃과 잎사귀들. 그리고 이쪽과 저쪽 여러 곳에서 얻어낸 풍경들. 그는 『작품은 결과가 아닌 하나의 상태이다』면서 『그 상태와 의미가 우리에게 감동을 던져줄 때 예술이 된다』고 강조한다. 김씨의 가계는 20세기 한국미술사의 한 단면이라고 할만큼 화단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선친인 김찬형은 고희동, 김관호와 더불어 도쿄미술대에 유학함으로써 한국에 서양화를 도입한 선구자였다. 도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에서 미술을 공부한 김씨 역시 국내에 생소하기만 했던 추상주의를 이식해 화단을 풍성하게 했다. 이용웅기자YYONG@SED.CO.KR 입력시간 2000/04/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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