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진정한 선진 신용사회

이효영기자(생활산업부)

비씨카드와 이마트간의 수수료 분쟁이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소비자들도, 언론도 할인점에서 카드를 못쓰면 큰일날 것 같은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국내에 할인점이라는 유통업태가 막 도입되기 시작한 지난 90년대 중반만 해도 할인점은 카드를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당시에는 까르푸ㆍ월마트 같은 외국계 할인점들이 카드를 받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기사로 실릴 정도였다. 이들 할인점이 카드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매일 저가판매(Everyday Low Price)를 모토로 하고 순이익이 2~3% 선에 그치는 할인점에서 카드 수수료를 떼어주고 나면 업태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본사 전략에 충실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제는 국내 모든 할인점들이 카드를 받고 있지만 외국의 경우 아직도 많은 할인점들이 카드를 받지 않거나 다른 업태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수수료율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기자간담회를 가졌던 구학서 신세계 사장도 “이마트가 카드사들이 요구하는 수수료를 주고 나면 상품가격 인상에 반영돼 업의 본질에 충실할 수 없다”면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카드를 하나도 안받는 최악의 경우도 생길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제품 가격을 내리겠다”고 공언했다. 결국 이대로 가다가는 실제로 이마트는 물론 다른 할인점에서도 일부 카드들을 취급하지 않거나 아예 카드 자체를 받지 않는 상황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카드를 취급하건 안하건 소비자들은 할인점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 입장에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카드를 못쓰는 불편도 불편이지만 과연 카드 수수료가 안나가도 기업이 실제로 가격을 내릴지에 대한 불신이나 의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에서도 스웨덴의 대형 DIY가구 체인점인 이케아(IKEA)에서 고객의 3분의1이 신용카드를 사용, 수수료 부담이 너무 커 카드 구매자에게는 70센트의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케아는 수수료를 절감하면 공격적인 가격 인하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영국 소비자 단체들도 가격인하로 이어질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면서 비난하고 있다는 것. 할인점들은 3년 전 백화점과 카드사간의 수수료 분쟁 때도 카드사가 백화점에 대해 일정 포인트의 수수료를 낮춰줬지만 가격은 내려가지 않았다는 카드사들의 반박에 귀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의 불신을 키운 것은 전적으로 기업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보유한 신용카드수가 1.96장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신용카드 국가로 성장했다. 할인점은 무려 300개에 이르러 유통업의 근간으로 자리잡았다. 카드사와 할인점업체들이 진정한 선진 신용사회의 덩치에 걸맞는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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