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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영화에서 사건은 꼭 밤에만 일어납니다.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는 항상 가로등 불빛조차 없는 캄캄한 골목길입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하려고 하면 CCTV는 고장 나 있거나, 아예 없는 장소일 경우가 많습니다. 어둠과 CCTV, 그리고 범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강력범죄가 발생하면 가로등과 CCTV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이 빗발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가로등과 CCTV, 범죄에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서울시 자치구 별 가로등 수와 CCTV 설치대수, 강력 범죄 발생 건수를 분석해봤습니다.
◆ 밤길이 밝은 서울, 어두운 서울
서울시가 통계지리정보서비스에 공개한 자치구의 가로등 개수(2011년 기준)를 단위면적으로 나눠봤습니다. 1㎢ 당 가로등 개수가 859개인 노원구의 밤길이 가장 밝았습니다. 서초구와 강남구가 각각 718개, 662개로 뒤를 이었습니다. 강북구의 가로등 수는 101개로 노원구보다 8배 이상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전체로는 평균적으로 1㎢마다 156개의 가로등이 설치돼 있습니다.
◆ 보이는 서울, 보이지 않는 서울
길을 걷다 방범용 CCTV를 가장 많이 마주칠 수 있는 곳은 양천구입니다. 올해 1월 기준으로 1㎢ 당 101대가 설치돼 있습니다. CCTV가 가장 적은 노원, 강서구(13대)의 약 8배에 달하는 숫자입니다. 다음은 75대가 설치된 동대문구, 71대의 용산구 순입니다. 서울 전체를 놓고 보면 1㎢ 당 36대의 CCTV가 있습니다.
◆ 범죄 발생 건수와의 상관관계
인구 10만 명 당 발생하는 절도·살인·강도·방화·강간·폭력 범죄 건수를 살펴보시죠. 가로등과 CCTV 통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중구와 종로, 서대문구의 범죄발생률이 높게 나타납니다. 가로등과 CCTV 개수에서 최하위권을 차지했던 도봉·강서구의 경우는 ‘예상을 깨고’ 범죄 발생 건수 역시 하위 4개 구 안에 듭니다. CCTV, 가로등 개수와 범죄예방이 큰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들인거죠.
고화질 CCTV를 한 대 설치하는 비용은 800~2000만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서울시는 매년 방범용 CCTV를 설치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최소 30억원의 예산을 책정해왔습니다. 유지보수 비용도 3~40억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사업 신청을 받아 집행하는 주민참여예산에서 차지하는 CCTV 설치비용 비중도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올해 예산은 8억 8,600만 원, 최근 확정된 2016년도 예산은 29억 7,000만 원으로 세 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범죄에는 무수히 많은 요인이 존재한다. 셉테드(범죄예방환경설계)·CCTV 설치 등에 투자하는 돈 만큼 예방효과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의 말입니다.
이 교수의 의견처럼 경찰 인력을 늘리고 장비를 확충하는 등 다른 형태의 지원이 CCTV와 가로등 개수를 늘리는 것 보다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범죄율을 낮출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CCTV와 가로등 설치를 통해 범죄예방에 어느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CCTV를 설치한 공원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강력범죄가 26.6% 감소했다는 국민안전처와 경찰청의 발표도 최근 있었습니다.
문제는 경제성입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데 금쪽과도 같은 혈세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입니다. /김경훈 기자·김현주 인턴기자 styxx@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