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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법적 분쟁이 줄을 이어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각됐던 'ELS(주가연계증권) 시세조종'에 대한 국내 첫 증권관련집단소송이 이뤄질 전망이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2004년 제정된 이래 2번째로 허가가 난 집단소송이라는 점에서 법조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물론 ELS 시세조종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대규모 소송이라는 점에서 금융투자업계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최근 김모씨 등 한국투자증권 부자아빠 ELS 289회차를 매수한 투자자 5명이 도이치뱅크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신청을 허가했다고 23일 밝혔다. 지난해 3월 소가 제기된 후 1년 6개월 만에 이뤄진 결정이다.
집단소송이란 1인 혹은 소수의 대표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의 효력은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소송제도다. 소송기간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피해 사실을 알지 못해 소송을 제기하지 못했던 피해자들까지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ELS소송에서 원고들이 승소해 손해배상을 받을 경우 해당 상품을 매수했던 모든 투자자들이 동일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투자증권을 통해 판매된 해당 ELS는 삼성전자와 KB금융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해당 주가가 기준을 충족할 경우 원금과 함께 7.15~28.6%의 수익률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둘 중 하나의 주식이라도 만기일 평가가격이 최초기준가의 75% 아래로 떨어진다면 원금손실을 입는다.
투자자들은 한국투자증권과 백투백헤지(Back to back hedge) 계약을 맺은 도이치뱅크가 수익금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만기 직전 42만주에 이르는 KB금융 주식을 매도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백투백헤지는 발행한 파생상품과 동일한 상품을 매입해 위험을 헤지하는 거래를 의미한다. ELS의 조기ㆍ만기상환조건이 달성될 경우 매수자들에게 지급돼야 하는 수익금은 한국투자증권이 아니라 도이치뱅크에서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재판부는 "도이치뱅크의 대량매도행위가 위험 회피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주식거래에 있어 주가에 인위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일시에 대량의 주식을 매도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특히 투자자에 대해 상환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증권발행회사나 헤저가 만기평가가격 결정일에 기초자산주식을 대량 매도한 행위는 그 부정성을 추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ELS 시세조종과 관련한 집단소송은 기존에도 제기된 적이 있지만 소송 허가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8년 한화스마트10 ELS 상품을 매입한 투자자들은 판매사인 한화증권과 백투백헤지 계약을 맺은 로열뱅크오브캐나다(RBC)가 수익금을 주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SK주식을 대량매도해 31억원의 손실을 봤다며 집단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32부는 "대표 당사자들 주장과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손해배상청구나 소송 요건에 해당함을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불허가 결정을 내렸다.
RBC의 SK주식 대량매도 행위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규정하는 소제기의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당 법은 소송 제기 요건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175조, 177조 또는 179조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만 인정하고 있고 이 조항은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위반행위로 형성된 가격에 의해 상품을 거래해 입은 손해'로 규정하고 있다. 시세 조종이 상품 거래 이전에 이뤄져야 할 것을 전제하는 셈이다. 증권사 측은 "대량매도가 있었더라도 투자자들이 이미 ELS를 취득한 이후에 발생했고 투자자들은 당시 증권을 보유하고만 있었지 거래를 한 것이 아니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고 재판부 역시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 재판부는 해당 투자사의 행위를 시세조종행위가 아니라 부정거래행위로 넓게 해석할 경우 시간적 인과관계의 성립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ELS는 매수 이후 기초자산 가격의 변동에 따라 투자수익금의 상환 여부가 결정되는 상품이므로 그 거래행위는 일반적인 주식거래와 달리 계속적,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해야 하고 불법행위에 따른 영향은 상환 완료 시에까지 미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원고 측은 법원의 이 같은 결정에 고무된 분위기다. 법무법인 한누리의 전영준 변호사는 "ELS 상품의 계속적, 연속적 특징을 인정해 대량매도라는 불법행위와 증권 거래와의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명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재판부가 소송허가 결정을 통해 도이치뱅크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만큼 앞으로 본안 소송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단소송인 만큼 승소 시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본소에서 투자자들이 승소할 경우 해당 ELS 상품을 매수한 모든 투자자들이 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ELS는 총 198억9,000만원 어치가 팔렸으며 투자자들은 약 25%의 원금 손실을 입었다. 조건을 충족해 만기상환을 받는 경우 수익률은 투자원금의 28.6%로 만약 불법행위가 없을 경우의 이득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 금액은 10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다만 ELS 시세조종과 관련한 소송은 1심에서는 승소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항소심에서는 투자자가 모두 패소한 바 있어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