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흑산도에 귀양가 있던 정약전은 그의 저서 '자산어보'에서 조기를 소개하며 '울음소리가 우레처럼 은은하게 서울까지 들려오면 만인이 입맛을 다신다'고 설명했다. 만인이 입맛을 다셨다는 것은 조기가 서민의 밥상에도 올라올 정도로 흔했음을 뜻한다. 지금이야 조기나 조기를 말린 굴비가 명절 때나 구경할 만큼 귀해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명태나 꽁치처럼 모두에게 익숙한 생선이었다. 얼마나 만만했으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자린고비가 대들보에 매달아 두고 바라만 보는 생선으로 굴비를 택했겠는가.
조기보다 못한 놈이 부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대가리에 다이아몬드 모양의 돌기가 박혀 있는 조기를 참조기라 부르며 진짜로 쳤고 돌기가 없는 놈은 짝퉁 조기, 즉 부세로 천대했다. 그런 부세가 최근에는 참조기보다 훨씬 값나가는 물건으로 둔갑해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는 크기 약 50cm의 부세 10마리가 든 1상자가 81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춘제 때 황금빛 부세를 먹으면 행운이 온다고 해 참조기보다 크기가 크고 황색이 감도는 부세가 큰 인기를 끌기 때문이다.
"돈 실러 가자 돈 실러 가자 칠산 바다에 돈 실러 가자"라는 뱃노래가 있다. 칠산은 과거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던 전남 영광의 법성포 앞바다다. 민속학자 주강현이 쓴 '조기에 관한 명상'을 보면 전에는 조기를 잡을 때 백동(10만마리)·천동(100만마리)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을 잡았다. 조기가 한창 잡히던 봄철 법성포에서 열리던 조기 파시의 분위기를 옛날 사람들은 "온 나라의 작부가 다 모이고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녔다"고 전했다.
추석을 앞두고 참조기 가격이 금값이다.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생육 부진과 중국 어선의 치어 잡이 탓이 크다. 이러다가 조상님께 드리는 제수용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올까 두렵다. 사람이 기운을 차리게 도와주는 조기(助氣)를 저녁 식탁에서 다시 보고 싶다. /한기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