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머니 조기경보」 도입 아직 시기상조/대선 이유로 통화 팽창공급 등 안할것/내년 경제운영 물가안정국제수지 개선에 중점둬야□대담:이병완 정경부장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의 하나로 내달 8일부터 은행예금의 지급준비율이 1.9%포인트 인하되고 총액대출한도도 축소된다. 이경식 한은총재는 2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간접통화조절방식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총액 대출한도의 감축이 필수적』이라면서 『총액대출한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더라도 재할인율 정책을 사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또 금통위 활성화와 관련, 『정례 금통위에서 심의된 의결사항 뿐만 아니라 간담회 등에서 논의된 주요 정책관련 사항도 공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은행법 개정을 통해 추진중인 비상임이사 중심의 이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이총재는 『계열기업군을 이사회 참여를 배제한 취지는 공감하나 기존의 규제장치나 주주권 행사의 보장 등을 고려할 때 장차 완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임시금융통화운영 위원회에서 내달 8일부터 예금지급준비율을 1.9%포인트 인하하고 총액대출한도를 축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내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금리의 하향안정화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단행된 조치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지난 4월 지준율 인하이후 시장실세금리가 몇달 못가 다시 오르는 등 지준율 인하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준율 인하가 곧바로 시장 실세금리의 하향안정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지준율 인하의 1차적 효과는 은행의 대출우대금리에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물론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시장금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겠지요. 전체 금리 수준의 하향안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달성하고 경제의 초과수요를 줄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준율을 추가로 인하하는 문제는 결국 총액대출한도를 줄이는 문제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직성 통화공급요인인 총액대출한도를 그대로 두고 지준율을 인하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은행이 간접통화관리 방식인 지준율, 재할인율 정책을 실제로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총액대출한도 때문이지요. 그러나 총액대출한도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더라도 추가로 감축되면 재할인율 정책을 본격 실시할 계획입니다.
정부의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과 관련, 금융기관들도 다양하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이 중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최근 정부가 은행책임 경영체제 확립방안을 발표했습니다만 보완할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부가 발표한 은행 책임경영체제 확립방안은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제도를 개편코자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은행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계열기업군에 대해 이사회 참여를 배제토록 한 것은 산업자본에 의한 은행지배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그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장차 완화돼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은행의 소유구조 측면에서 동일인 주식소유한도나 의결권 행사의 제한과 같은 별도의 규제장치가 마련돼 있는데다 주주로 하여금 경영진을 감시, 견제토록 하는 상법의 취지가 발현될 수 있도록 주주권의 행사도 보장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OECD가입이 확정돼 이제 국회의 비준절차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OECD에 가입하면 자본거래의 자유화로 핫머니의 빈번한 유출입에 따라 통화 및 외환정책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핫머니의 급격한 유출입에 따른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을 예방하기 위해 핫머니 조기경보시스템과 같은 장치를 마련할 계획은 없으십니까.
▲일부에서는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하면 핫머니가 급격히 유출입함으로써 과거 멕시코 사태와 같은 금융위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와 멕시코는 경제 기조가 다르기 때문에 그같은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OECD에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핫머니가 쏟아져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자본시장 개방은 스케줄에 따라 점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핫머니 조기경보시스템과 같은 장치는 아직 필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환율과 관련해서는 올해 경상수지 적자폭이 2백억달러를 넘을 전망이고 내년에도 크게 개선되기 힘들 것으로 보여 환율절하 압력이 커질 요인이 많습니다. 지나친 절하를 방지하기 위해 가급적 양질의 외자, 즉 국내에 들어와 오래 머무는 외자를 들여와야 할 것으로 봅니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 통상 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자극적이고 팽창적인 정책운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정부가 팽창적인 정책을 사용하게 되면 오히려 대선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팽창적인 경제정책은 국민들에 불안감만 조성할 뿐입니다. 적어도 한국은행은 그같은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은은 내년에도 통화를 많지도, 적지도 않게 공급할 것입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은행들이 예금유치를 위해 차명계좌를 알선해주는 등 금융실명제에 구멍이 뚫린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차명계좌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나온 것을 봤습니다만 이 문제가 모든 은행에 일반화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합의차명의 경우에는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습니다. 단지 자금출처조사후 세금추징하는 정도에 그칠 겁니다. 도명의 경우 이름을 도용당한 당사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들어있는 예금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면 고스란히 예금을 뺏길 위험이 있기 때문에 도명계좌는 극히 미미할 것으로 봅니다.
이번 문제는 결국 금융기관 직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비실명으로 예금코자 하는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수신위주 평가방법을 개선시키고 직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논의되는 실명제 보완문제는 실명제 자체의 보완보다는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늦추거나 완화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타 세제와의 형평성 차원에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당초 계획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는 29일이 저축의 날입니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저축률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저축률 제고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축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과거 10년동안 임금이 매년 15%씩 올라 명목임금이 높아진데 따른 것입니다. 국민경제 전체적인 부가가치의 증가보다 명목임금이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저축률이 떨어지는 것이지요. 저축률을 높이는 방법은 우리 경제의 안정기조를 정착시키는 길 밖에 없습니다. 물가를 안정시키면 명목임금 상승의 명분이 줄게 되고 이는 결국 저축률의 증가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년 경제에 대한 전망과 아울러 주요 정책 과제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크게 낮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되는데다 적지않은 물가불안요인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은 고비용저효율의 구조적인 취약성에다 지난 2년간 9%수준의 고성장을 지속한 결과 초과수요 압력이 작용하는데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이같은 현상이 지속될 전망입니다.
따라서 내년의 경제정책 운용은 우선 물가안정과 국제수지 개선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통화와 재정면에서 안정화 기조를 견지하는 것이 긴요할 것으로 봅니다. 아울러 임금안정과 노동시장의 경직성 해소, 소비절약과 저축증대 등에 보다 많은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요소비용의 안정을 통해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입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 및 자본재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특히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잠재성장 능력에 맞게 설정, 유지돼야 한다고 봅니다.<정리=김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