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측근 2인 피의자 전환…'리스트 수사' 변곡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정치권 금품 제공 의혹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인 박준호(49) 전 경남기업 상무에 이어 23일 수행비서 이용기(43)씨를 긴급체포하고 신병을 확보했다. 박 전 상무는 구속영장도 청구됐다.

두 사람에게는 나란히 증거인멸 혐의가 적용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규명할 물증을 빼돌리고자 공모한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십수년간 성 전 회장과 동고동락한 핵심 측근들이다. 성 전 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던 터라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수사의 성패가 두 사람의 ‘입’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수사팀 내부에서는 내심 이들이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의 강력한 ‘조력자’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수사팀 관계자가 지난주 “의혹을 해소해줄 ‘귀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분석됐다.

실제 박 전 상무를 비롯한 성 전 회장 측근들이 성완종 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언론 등에서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혀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사가 대체로 순항할 것이라는 전망도 일부 있었다.

막상 뚜껑이 열리자 수사팀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성 전 회장 측근 가운데 21일 가장 먼저 소환된 박 전 상무는 검찰 조사에서 “비밀장부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했고, 22∼23일 연이틀 검찰에 나온 이씨도 비슷한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조사 과정에서 이들이 성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 로비를 뒷받침할 핵심 물증을 없애거나 숨기는데 관여했다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면서 수사팀으로서는 애초에 신병 확보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검찰 안팎에서는 두 사람의 입을 열기 위한 ‘압박 전술’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금품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하고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간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대했던 성 전 회장의 측근들마저 입을 닫으면서 수사팀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과거 검찰에서 기업 비리 수사를 했던 한 변호사는 “현재 수사팀으로선 의혹의 핵심 증인격인 두 사람을 압박해 입을 열게 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두 사람을 외부와 격리시킴으로써 ‘말맞추기’ 등 더 이상의 진술·증거 조작을 차단하겠다는 포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은 두 사람을 동시에 구속한 뒤 ‘냉온 양면 전략’을 구사하며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하는데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성 전 회장의 심복들인 만큼 생전에 의심받았던 횡령·분식회계 행위를 몰랐을 리 없다는 전제 아래 경남기업 비리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식으로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일 수도 있다.

이씨를 비롯한 성 전회장의 측근들을 추가로 체포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별건수사를 한다는 비판이 수사팀에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런 카드가 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저인망식 ‘단서 수집’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대한 많은 관련자를 상대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진술과 자료를 확보해 하나하나 꿰어맞추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등 리스트 인사의 주변인물들이 예상보다 일찍 검찰에 나올 수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과거에도 종종 수사가 벽에 부딪힐 때는 전방위적으로 관련 진술이나 자료를 모아 하나하나 따져가는 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곤 했다”며 “이 와중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단서 하나가 수사의 활로를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수사팀 관계자가 “증거인멸 수사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수사가 두 갈래가 된 셈”이라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틀 전 “지류(증거인멸)가 본류(성완종 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비슷한 취지로 읽힌다.

증거인멸 수사 과정에서 소정의 성과가 있었다는 자신감으로도 읽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사팀이 박 전 상무와 이씨가 빼돌린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유력한 단서를 확보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디지털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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