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비쟁점 세법들은 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만 나머지 쟁점 안건들은 아직 제대로 훑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한 중진의원이 17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최근 국회 조세심사 분위기를 전한 대목이다. 정부와 여야가 조세소위를 통해 자녀장려금 도입 등 비쟁점 세법안 48건을 우선 처리하기로 최근 합의했지만 나머지 안건들의 처리는 난망하다는 의미다.
17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현재 조세소위에 상정된 세법개정안은 160여건. 이중 잠정합의된 48건을 제외하면 110여건이 남아 있는데 처리 시점은 연말까지 불과 2주 정도 남은 상태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평상시 같으면 벌써 쟁점법안들까지 어느 정도 조율이 이뤄져야 했을 시간인데 지금은 조율은 고사하고 전체 상정안건을 이제 겨우 일독(상정 안건 내용을 개괄적으로 한 번 훑어 읽어보는 것)했을 뿐"이라며 "그나마도 일정이 촉박해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것 같은 쟁점 안건들은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여야의 조세소위 위원들은 특검 등 정치적인 문제로 정국이 얼어붙어 상임위 가동이 늦어져서 그런 것이지 조세소위 자체의 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같은 여야의 변명은 12월 초였다면 통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설득력이 없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당국자는 "지난 2일에 야당의 불참 속에 여당이 조세소위를 열었을 때만 해도 새누리당 내에서 이달 16일까지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려면 시간이 촉박하니 여당 단독으로라도 일단 쟁점들을 미리 공부해놓자는 의견이 있었다"며 "그런데 이후 국회도 정상화됐고 16일도 넘겼는데 이제 겨우 법안들을 일독하는 수준이니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 최대 쟁점은 이른바 부자·대기업 증세 여부다. 야당은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 과표구간 등을 손질해 고소득자나 대기업 등을 중심으로 세금을 더 걷자는 입장이고 여당은 불가하다고 버티고 있다.
이중 소득세의 경우 민주당 의원들의 주요 안은 현행 '3억원 초과'인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을 '1억 2,000만원 초과'나 '1억5,000만원 초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최고세율 역시 현행 38%인 최고세율을 앞으로 40%나 42%, 45% 등으로 올리자는 게 민주당 측 주장이다. 물론 새누리당과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법인세의 경우도 증세 부분을 놓고 여야 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최저한세율을 1%포인트 정도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태다. 다만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법인세 증세는 여당과 정부의 반대가 워낙 강해서 추진하기가 솔직히 쉽지는 않을 것 같다"며 "하지만 우리 당도 명분 없이 증세안을 접을 순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처럼 세법 처리가 늦어질 경우 당장 내년도 정부 예산안 처리에까지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세법안 중에는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돼야 할 예산부수법안들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예산안을 짤 때 이들 예산부수 세법안들이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내년도 세수를 전망했고 그에 기초해 지출계획을 짠 상태다. 따라서 늦어도 연말까지 예산부수 세법의 처리가 불발되면 당장 내년 세수계획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
이 경우 구멍 난 세수는 정부가 빚(국채발행 등)을 내서 메우거나 지출을 일부 줄이는 방식으로 메워야 한다. 전자는 국민에게 빚 부담을 지우는 꼴이고 후자는 정부의 재정사업 지출 축소로 경기회복·서민지원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 정부 세법개정안이 좌초될 경우 내년도 세입에 생길 구멍은 최대 1조원대 규모다. 이를 메우기 위해 국채 등을 발행해야 한다면 여야 모두 국민에게 빚을 지웠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