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사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기업은행 민영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가운데 위기에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업무를 전담한 국책은행을 민영화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5일 "중소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려면 기업은행을 국책은행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 내에서 기업은행 민영화 반대 의견을 알리며 설득하고 있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용보증기금이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시중은행을 통해 중소기업을 지원할 수 있지만 간접지원이 아닌 직접지원 카드를 포기할 것인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비올 때 우산을 뺏는' 시중은행 행태에 비춰봐도 중소기업 전문 국책은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990년대 금융실명제를 시행할 때도 기업은행은 중소기업의 돈줄이 막히지 않게 적극적으로 나섰던 반면 일반 시중은행은 외면했다"고 떠올렸다.
정부는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을 위해 우리금융지주ㆍ산은지주ㆍ기업은행 등 정부 소유 금융회사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해에 이어 세 번째 민영화 작업에 들어갔고 산은지주의 경우 기업공개(IPO)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6월 블록세일 방식으로 지분매각이 추진됐지만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아 중도에 무산됐다. 현재 정부가 보유한 기업은행 지분은 64%로 수출입은행ㆍ정책금융공사 등 우호지분을 합칠 경우 75%에 이른다.
김 위원장이 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힘에 따라 올 하반기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은행의 민영화 작업에도 명암이 엇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금융의 경우 오는 7월27일 예비입찰 마감 결과에 따라 민영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KB금융지주 등 인수후보자의 의지에 달려 있지만 정부는 일단 민영화 여건이 지난해보다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
산업은행의 경우 올해 내 주식시장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이 "IPO한다고 꼭 민영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본격적인 민영화 작업과는 분명히 선을 그은 상태다. 기업은행은 지난 1ㆍ4분기 실적이 호전되며 정부 지분 매각이 다시 본격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지만 김 위원장의 공식적인 반대로 올해 내 매각작업 재개가 불투명해졌다.
최근 유럽 사태가 악화되고 미국 경제지표가 둔화되며 경기침체에 대한 공포가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 소유 금융기관의 민영화 작업은 예상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융계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시장을 안정시킬 정책수단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 소유 금융기관 민영화를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며 "하반기부터는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부 소유 금융회사의 민영화 작업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