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증가율은 뚝뚝 떨어지는데 물가는 오르고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대출은 쌓여 있고….’ 경제상황이 점점 코너로 몰리고 있다. 유가가 오름세를 지속하는 동안에도 정부당국을 그나마 안심시켰던 환율이 동시에 오르면서 이젠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던 물가마저 당국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이라는 끔찍한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를 금기(禁忌)로 여기고 있지만 민간연구소들의 분석만을 놓고 보면 이미 경고등은 켜졌다고 볼 수 있다. ◇소비자물가 5% 육박도 가능하다=소비자물가는 지난 1~6월 전년동기 대비 3.1%를 기록하며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올해 내내 3%대 초반을 보이고 있으며 유가 상승분 등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은 2%대 후반에 머물고 있다. 고유가를 원화절상이라는 방패가 지켜준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빠른 속도로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보고서를 보면 두바이유 기준으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인 상황에서 원ㆍ달러 환율이 1,050원이면 물가는 3.8%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환율이 1,100원으로 50원 상승하면 물가는 4.3%로 올라간다. 두바이유가 현재 53달러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60달러는 이달이라도 올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환율 1,100원도 지난해의 움직임을 보면 당장에라도 현실화할 수 있는 수치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의 고유가 추세를 고려해볼 때 적잖은 폭의 소비자물가 상승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달러 강세는 곧 수입물가의 단가를 끌어올린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 문제까지 겹쳐 있어 경기회복을 위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의 논리도 더욱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지만 금리인상은 소비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 뻔하다. 물론 환율이 올라가면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좋아진다고 하지만 이 또한 유가가 안정세를 보이는 한가로울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다. 유가인상은 기업의 수입 원자재 부담을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유가와 환율의 동반 상승은 그만큼 경제에 ‘더블 펀치’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한국은행이 최근 하반기 경제 성장률을 4.4%에서 4.5%로 끌어올린 기본 토대였던 ‘내수회복’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질 위기에 몰리고 있다. ◇수출도 악재, 금리 인상 압박은 높아져 가고 = 이 같은 우려는 산업연구원이 최근 펴낸 ‘유가 급등이 주요 10대 산업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 보고서에 그대로 담겨 있다. 연구원은 유가가 배럴당 47달러에 이를 경우 수출 차질액이 올 하반기 26억3,000만달러, 내년 상반기 27억1,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53달러인 경우에는 하반기 36억3,000만달러, 내년 상반기 40억1,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시나리오를 적용해보면 10대 주력 업종의 수출 둔화율은 평균적으로 2.4%에 이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터에 부동산 가격 급등은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독소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하반기에 부동산 시장 호조세가 지속되면 4ㆍ4분기 중 금리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부동산 시장 불안은 통화당국으로 하여금 금리인상 카드를 꺼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성장률 수정 조정을 통해 목표로 세운 4%대도 저금리 기조 유지 등 확장적 정책 기조가 100% 발휘됐을 때 가능한 목표라는 점에서 금리인상은 경제위축을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이래저래 경제상황 전반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상정하기 힘든 그림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