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만 해도 펀드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외계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외계인은 지금 '행운아'로 처지가 바뀌었다. 국내 펀드시장은 이처럼 큰 변화를 겪었다. 한해에 20~30%의 수익률을 올려주던 '마술램프'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고 원금회복만을 기다리는'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했다. 일부 펀드 투자자들은"전문가도 못 믿겠다"며 과감히 펀드를 환매한 후 그 돈으로 직접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펀드시장이 어느새 원망과 불신에 휘말리고 말았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판매사와 운용사의 '팔고 보자'식 판매관행과 개인들의 '묻지마'투자관행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이는 보다 성숙한 간접투자를 위한 '성장통'이라는 의견이 많다. 서울경제신문은 간접투자시장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3회의 기획연재를 통해 짚어본다. 회사원 김주상(37)씨는 지난 4월 초 1년간 납입했던 국내 주식형펀드를 환매한 후 그 돈으로 직접투자를 시작했다. 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까먹었지만 특정 테마에 힘입어 주가가 단기간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르는 종목을 보고는 직접투자를 결심했다. 다행히 김씨는 아직까지 20%의 수익을 거두고 있다. 김씨는 "펀드에 대한 '배신감'이 컸고 아무래도 직접투자가 잘만 되면 짧은 기간에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펀더멘털 무시한 직접투자는 위험=최근 주가급등과 함께 김씨처럼 직접투자로 회귀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그동안 무조건(?) 수익이 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던 펀드의 수익률이 지극히 부진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형펀드의 1년 평균 수익률은 현재 -22%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현재 유가증권시장에서 개인의 거래비중은 60%를 넘어섰다. 4월 말에는 최고 66%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8월 말만 해도 개인 거래비중은 40%에 머물렀다. 개인들은 4월 이후 유가증권시장에서만 2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개인의 직접투자 열풍은 펀드 숫자가 감소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은 자본시장법(2월4일) 이후 1,300개 펀드의 추가 판매에 나서지 않았다. 일종의 '펀드 구조조정' 일어난 셈이다.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은 "펀드 수익률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개인들이 직접투자에 나선 것 같다"며 "펀드에서 큰 손실을 본 개인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포트폴리오나 기업분석에 기초하지 않은 직접투자는 간접투자 이상으로 큰 실망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적립식펀드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국내 주식형펀드 설정규모를 보면 개인들이 간접투자에서 직접투자로 선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체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8월 말 144조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감소세로 돌아선 후 지금은 139조원대에 그치고 있다. 펀드자산도 지난해 5월 말 140조원에 달했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100조원을 간신히 회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펀드 자산이 1년 사이 40조원이나 날아간 셈이다. 더구나 증시가 침체를 딛고 급등하기 시작한 3월 말부터 한달간 10조원의 자금이 빠져나가기도 했다. 급등에 따른 환매도 있겠지만 직접투자를 위한 자금마련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형편없는 펀드 성적표를 본다면 간접투자에 눈길을 주고 싶지 않겠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시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불안(리스크)을 사는 게 투자'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우재룡 동양종금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3년 정도를 내다보면 지금이 간접투자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다만 아직은 변수가 많은 만큼 거치식보다 적립식펀드에 대한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불완전판매 줄어드는 계기 될 듯=펀드의 신뢰가 깨지면서 간접투자 산업의 기틀도 흔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간접투자는 자본시장의 허리를 튼튼히 할 수 있는 주춧돌로 평가된다. 펀드시장이 활성화되면 금융회사는 인력을 양성하고 자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자산운용사로 거듭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제조업에서의 삼성전자처럼 금융시장에서도 국부를 늘려줄 금융산업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는 셈이다. 물론 펀드시장이 개인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데는 저조한 수익뿐 아니라 금융회사들의 불완전판매 탓도 크다. 펀드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위험을 충분히 알리는 노력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최근 금감원이 실시한 미스터리 쇼핑에서 금융사들이 펀드의 환매나 위험고지 설명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신보성 한국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은 "지난 1년간 국내 간접투자시장은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며 "금융회사들의 경우 불완전판매에 대한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고 개인들 역시 장기적인 계획 아래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준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