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 자(者)를 만나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내고자 했던 진나라의 왕 정(政, 후에 진시황)은 경쟁국을 물리치고 나라를 다스릴 방도를 찾던 중 우연히 한비자(BC280?~233)의 글을 접하고 그의 사상에 감동받았다. 그 글은 '고분(孤憤)'이라는 제목으로 개혁가와 기득권 세력이 공존할 수 없지만 개혁가가 투쟁해야만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진왕은 한비자를 만나기 위해 그의 나라를 쳐들어가 극적으로 만난다. 이렇게 진왕이 극적으로 한비자를 만난 지 12년 후 중국을 통일하고 진시황이 됐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의 바탕은 바로 한비자가 집대성한 법가사상이다. 한비자의 사상은 중국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으며 한나라 무제 등 역대 황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근세에 이르러 마오쩌둥 역시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존중했다. 임종에 이른 유비의 경우 아들에게 꼭 읽으라고 당부한 책 중 하나가 한비자였다. 제왕학의 고전으로 불리는 '한비자'는 지금까지 권모술수 처세서로 리더의 권력술을 가르치는 리더십 바이블로 자리잡고 있다. 권모술수라면 웃으면서 상대방에게 칼을 꽂는 야비하고 얄팍한 술수 등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는 한비자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이 부족한 탓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중국통일을 염원했던 그는 군주의 권력강화를 위해서는 법치ㆍ술수ㆍ권력 세가지 수단에 의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술수가 바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권모술수다. 그래서 2000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까지 한비자의 뒤에는 '권모술수'라는 네글자가 따라다닌다는 것. 제자백가를 전공한 저자는 중국의 황제와 지도자들이 탐독했던 한비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냈다. 저자는 당시 사상계를 지배했던 유가와 묵가와 명가 등의 사상들과 달리 한비자는 현실주의적이었으며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한비자의 사상은 유가 등 이상주의를 꿈꿨던 당시 동아시아의 전통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책은 한비자의 사상에서 리더십의 덕목을 일곱가지로 요약했다. ▦리더는 기득권을 꺾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革) ▦리더는 대안없는 비판 대신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解) ▦리더는 부하의 충성에 의지하지 않고 시스템을 만든다(用) ▦리더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움직인다(法) ▦리더는 스스로 나서지 않고 주위에 인재를 배치한다(術) ▦리더는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理) ▦리더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진다(勢) 등이다. 저자가 2000년 고전을 오늘의 리더들에게 권하는 이유는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한반도 통일문제가 구체적인 현안으로 다가온 오늘날의 모습이 과거 한비자의 시대와 닮아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자신이 처한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지도자와 리더십에 초점을 맞춰 깊이 고민했던 한비자의 사상이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각 분야에서 격변하는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해법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