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비자금 수사 일단락

정·관계 로비 의혹 규명 실패
검찰 수사 패러다임 전환 절실

검찰이 한화그룹과 태광그룹의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확인하고도 정ㆍ관계로비 의혹을 밝혀내지 못하자 수사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의 정ㆍ관계 로비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서부지검은 31일 이호진 회장 등 관련자 7명을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했지만 4,400억원대의 비자금을 확인하고도 정ㆍ관계 로비 의혹을 규명하지 못해 사실상 실패한 수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날 검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등 관련자 11명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1,000억원대의 비자금을 확인했지만 비자금의 출처와 사용처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날 서울서부지검 봉욱 차장검사는 "태광그룹은 무자료 거래나 장부조작, 허위 회계처리 등 수십년간 사용된 고전적인 수법으로 비리를 저질러왔다"면서도 "태광의 정ㆍ관계 로비의혹을 충실히 조사했지만 회사 상층부가 로비에 개입했다는 사실은 발견되지 않아 이 부분의 기소에 이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태광그룹 수사 초기에는 비자금이 정ㆍ관계 로비에 사용됐을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검찰은 방송통신위원회는 물론 국세청ㆍ금융감독원 등 태광그룹이 수년간 방송업계와 보험업계 등에서 논란이 된 인수합병을 이어왔음에도 관련 증거를 찾는 데 실패했다. 검찰은 "(방통위 관련) 성매매 경위와 회사 관계자 개입 여부 등을 심층 조사했지만 뇌물공여 의사 부분에 대한 (사측의) 공모관계가 인정되지 않아 추가 기소할 만한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에서도 두 사건에서 ▦압수수색 18회 ▦참고인 수사 437명 ▦계좌추적 23회를 실시하고도 로비의혹 규명에 실패한 데 대해 제보자 진술에만 의존하는 전근대적 수사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과학적인 증거가 아닌 제보자 진술에만 의존할 경우 대기업 수사도 결국은 지난 한명숙 수사와 같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먼지떨이식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이 아니라 확실하게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봉 차장검사도 수사 소회를 묻는 질문에 "이번 수사를 통해 진술에 의존하는 수사보다 자료와 물증에 따른 수사로 성과를 거두게 됐고 압수수색과 계좌추적ㆍ회계분석 등 과학수사로의 패러다임 변환이 절실히 필요함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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