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베짱이를 위한 변명

고대 그리스에서 아이소포스(이솝)가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약 2,500년의 긴 세월동안 베짱이는 철모르는 한량의 대명사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베짱이의 이미지는 세계 어디서나 깽깽이를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로 나타난다.개미는 뜨거운 여름 땡볕에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데, 베짱이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며 삶을 만끽하다 겨울이 되자 초라한 모습으로 개미 집 앞에서 구걸을 하게 된다는 이솝 우화 때문이다. 사실 베짱이는 여름에 풀섶에서 한가로이 울지 않는다. 베짱이의 울음은 노래소리가 아니다. 베짱이의 울음은 일하는 것 밖에 모르는 개미에게나 한가롭게 들릴 뿐, 사실은 처절한 몸부림에 더 가깝다. 베짱이가 여름 내내 울어대는 것은 어떻게든 암컷을 유혹하여 자신의 자손을 후세에 남기려는, 번식을 위한 수컷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암컷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다른 수컷 보다 더 오랫동안, 더 큰 목소리로 노래를 해야 하는 것이 이 베짱이 수컷들의 운명이다. 주변에 아무리 먹을 것이 많아도 수컷에게는 먹고 쉴 시간이 없다. 삶의 현장은 어디서나 이렇듯 숨막히게 돌아가는 법이다. 베짱이는 겨울이 되기 전에 죽는다. 암컷들은 날이 추워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알을 낳아 땅 속 깊이 묻어야 한다. 그래야 봄이 되면 몇 년 전에 땅 속에서 부화된 애벌레가 어른 베짱이의 삶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짱이에게 겨울은 없다. 베짱이는 알이나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짱이는 겨울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베짱이가 여름에 짝짓기를 하지 않고 개미처럼 땀흘려 일했다면 벌써 멸종했을 것이다. 개미는 성충으로 겨울을 난다. 따라서 개미는 여름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베짱이처럼 짝짓기로 시간을 허비했다간 겨울에 굶어 죽기 십상이다. 모든 것은 자기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다. 어른 개미는 꼬마 개미에게 베짱이처럼 놀면 안된다고 가르쳤을 것이고, 어른 베짱이는 꼬마 베짱이에게 개미처럼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짓을 하면 안된다고 훈계했을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강하게 몰아 닥쳤던 지난해,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개미는 힘들여 모았던 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IMF로 알거지가 되고, 베짱이는 열심히 노래한 곡을 앨범으로 발표하여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베짱이는 아직도 미움의 대상이다. 인터넷 유머방에서 베짱이는 최근 「국회의원」과 비교되는 영광(?)을 안았다. 「베짱이와 국회의원의 8가지 공통점」 가운데 「보면 괜히 다리를 분지르고 싶다」가 눈에 띄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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