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145> '신기루일까, 오아시스일까'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죠

tvN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회 캡쳐 화면. /사진제공=tvN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에 떨어진 당신은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걷고 있습니다. 쓰러지기 직전 저 멀리 오아시스가 보입니다. ‘이제 살았구나’ 싶어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마음이 빚어낸 환영, 신기루였다면 당신의 희망은 절망으로 바뀔 테죠. 그리고 몸집이 커진 좌절감이 당신을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는데 나타날 듯 나타나지 않는 사막의 오아시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모든 걸 포기했다면 편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후회마저 듭니다. ‘내가 헛된 희망을 품었던 걸까’, ‘오아시스가 정말 있기는 한 걸까’ 하는 근본적 회의감이죠.

‘사막’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선 이 곳 역시 사막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을 헤매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꽤 많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청년 실업률, 계약직 비율 등 통계 수치를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진로 고민에 빠진 10대부터 취업을 걱정하는 20대, 가족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되려 증폭되는 30~40대, 노년에 생계 걱정을 하는 50~60대까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뉴스를 소비하는 주된 플랫폼인 네이버나 다음의 앱 상단에 위치한 뉴스들 역시 불안하고 막막한 현실을 담아낸 것들이 많습니다. 미세한 수치 차이만 있을 뿐 언제 봐도, 누가 써도 비슷비슷한 내용이지만 항상 주요 뉴스로 분류돼 첫 페이지를 장식합니다. 이런 뉴스를 접한 몇몇 사람은 격한 공감을 표하며 본인의 상황을 하소연하고 몇몇 사람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아무도 묻지 않은 본인의 스펙을 댓글로 남기기도 합니다. 어쨌든 댓글이 익명으로 의견을 남기는 창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차마 주변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없는 부분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혼자 사막에 떨어진 것처럼 더 쉽게 절망감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절망은 희망을 품은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기대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실망할 이유도 없습니다. 오아시스를 간절히 바랬던 이는 이 사막 어딘가에 목을 축일 물이 있을 거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사막이라는 현실 자체에 순응하고 모든 걸 체념했다면 신기루조차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녹록지 않은 현실, 답답하고 막막한 기분에 주저앉아 있다면 반대로 다시 일어날 힘 역시 아직 남아있으리란 기대를 해봅니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알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사막을 헤매다가 발견하게 될 오아시스가 진짜 오아시스일지 신기루일지 누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면 무작정 떠나는 것도 방법입니다. 편하고 빠른 길이라면 좋겠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내가 걸어간 대로 길이 되기도 하니까요. 적어도 tvN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대사를 보고 가슴 뛴 이라면 오아시스를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길이란 걷는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는 길은 길이 아니다. 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길이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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