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25일 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에서 한국토지신탁의 대주주 변경 심사 안건을 처리하지 않을 것 같다. 올 들어 벌써 네 번째다. 보고프론티어펀드는 한토신 2대 주주인 아이스텀앤트러스트와 지분(34.12%) 인수 계약을 맺고 지난 1월13일 금융위원회에 대주주 변경 승인 신청을 냈다. 하지만 두 달이 넘도록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민감한 안건이라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벌써 세 차례나 이 안건은 증선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금융 당국의 고심은 보고펀드와 함께 들어온 글로벌 사모펀드(PEF)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때문일 것이다. 공동으로 투자해 한토신의 지분을 산 이들 펀드가 한토신의 2대 주주가 되는 것은 법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토종 사모펀드인 보고펀드가 자금의 절반을 댔고 의결권·이사선임 등의 권리를 보유하는 공동 인수 형식을 취했다. 보고 측은 세간의 논란을 의식해 KKR가 유동성 공급자(LP)에 불과하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확약서까지 받아 금융 당국에 제출했다. 대주주 적격성에 문제가 없다는 것은 법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대주주 변경 심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것이 금융 당국의 심도 있는 검토 때문만일까. 오히려 이보다는 금융위와 금감원이 서로 책임 떠넘기기가 더욱 직접적인 이유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쪽 모두 KKR라는 해외 PEF가 국내 금융사를 우회 인수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법적 하자가 없는 안건을 증선위에 올리지 않는 금감원이 불만이고 금감원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금융위는 쏙 빠지고 자신들이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까 봐 우려하고 있다. 임종룡 신임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와 금감원은 '혼연일체'라고 강조했지만 한토신 처리를 둘러싼 두 기관의 모습을 보면 이는 공염불처럼 들린다. 또 하나의 '변양호 신드롬'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2003년 외환은행의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후 공무원사회에서 논쟁적인 사안이나 책임질 만한 결정을 회피하고 보신주의로 흐르는 현상이 만연했다.
그는 2013년 펴낸 책 '변양호 신드롬'에서 "공직사회가 아직도 '변양호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적었건만 얄궂게도 그가 만든 보고펀드는 아직도 변양호 신드롬과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