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글로벌 슈퍼 갑' 애플의 비밀주의


애플의 비밀주의는 악명이 높다. 이 사실을 익히 들어왔던 기자로서도 이를 실제로 목격했을 때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예전에 만난 애플 본사 직원은 이름 외에 성을 기자에게 알리기를 꺼려했으며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고 하자 '애플 직원들은 명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국정원 저리 가라'할 수준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 밖의 이야기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다. 비밀유지서약은 애플을 그만 두고 난 후에도 3년간 지켜야 한다. 실제로 해외 언론에 등장하는 애플 출신의 제보자들은 모두 가명이나 익명을 쓴다. 애플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전속 변호사들에게 고소당하기 싫어서다. 애플은 협력사 직원들에게도 비밀유지서약을 요구한다. SK텔레콤이나 KT도 마찬가지다. 워낙 비밀주의가 강하다 보니 가끔 희한한 일도 벌어진다. 지난 1일이 그랬다. 이날 오후10시, 애플이 한국에도 아이폰4S를 출시한다는 '공지'를 자사 홈페이지에 띄웠다. 바로 몇 시간 전에도 수많은 기자들이 SK텔레콤이나 KT에 확인해봤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양사 관계자들은 늦은 시간에 전화통에 불이 나는 일을 감수해야 했다. 이들은 애플이 이 날 국내 아이폰4S 출시 일정을 공지할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바꿔 말하면 언제 확정될지 모르는 일정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애플은 또 자기주장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SK텔레콤의 경우 4일 자정부터 아이폰4S 예약가입을 받아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마케팅 방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제조사인 애플의 간섭 탓에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이 마케팅 일정에 차질을 빚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애플과 복잡다단한 논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외국 회사 제품을 이렇게 열심히 팔아야 하나'하는 회의가 든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렇다고 무시하기도 힘들다. 아이폰ㆍ아이패드는 소비자들이 찾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슈퍼 갑', 애플에 너무 휘둘리지 않으려면 애플이 자발적으로 자세를 낮추도록 할 만한 토종 경쟁사가 더 많이 등장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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