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된 등잔·벼루 발견… 신라 왕궁터 본격발굴

경주문화재硏, 시굴성과 공개
길이 28m짜리 건물터 등 확인
만파식적 보관 전설 서린 곳

18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한 경북 경주 월성 내부 5만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받침돌에 해당하는 초석·적심 등을 갖춘 건물터가 확인됐다. /경주=연합뉴스

경주 월성 내부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신라 때 기와. /사진제공=문화재청

신라의 천년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이 처음으로 속살을 드러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주 월성은 신라의 제5대 왕인 파사왕(婆娑王)이 서기 101년에 처음 쌓기 시작한 것으로 이후 신라가 멸망한 935년까지 대대로 왕이 거주한 곳이었다.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됐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될 만큼 월성은 중요한 국가 시설이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심영섭)는 28m 규모의 왕궁 건물터 등 지난해 12월12일 시작한 월성 내부 시굴조사의 성과를 18일 공개했다. 신라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월성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소는 월성의 전반적인 지하 매장구조를 파악하고자 중앙지역 5만7,000㎡를 시굴조사했고 유적의 가장 윗부분을 조사한 현재까지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을 수습했다. 이와 함께 연구소는 건물지 중 3호로 명명한 곳은 정면 12칸, 측면 2칸 규모로 길이가 28m에 이르며 폭은 7.1m인 초대형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기단과 초석(礎石·받침돌), 적심(積心·초석 밑 다짐돌) 등을 갖춘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을 확인했다. 또 고배(굽 높은 그릇), 병, 등잔, 벼루 등이 고루 출토됐고 '井' '口'자를 음각으로 새긴 토기도 발견돼 본격적인 발굴 과정에서 다양한 유물이 더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심 소장은 "현재까지 확인한 건물지와 담장 흔적은 유물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 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 이행 차원에서 시작됐다. 앞서 1914년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가 남쪽 성벽 아래쪽을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첫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연구소는 이번 시굴조사 성과를 20일 열릴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하고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에 착수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발굴 조사가 완료되기까지 10년 이상에서 30년까지도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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