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 최소인권 보장해야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 등의 자녀도 초중학교에 다니고 건강보험 혜택 등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이 곧 발의될 모양이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몇몇 비정부기구(NGO)들과 만든 '이주아동권리보장법 기본법' 제정안이다.

우리나라는 속인주의(혈통주의)를 택해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에게는 국적도, 체류자격도 주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쫓겨날까 걱정하는 부모가 모국 대사관에 출생신고도 하지 않아 무국적자ㆍ국제미아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장이 승인하거나 보증인이 있으면 초중학교에 다닐 수 있지만 고교에 다니는 경우는 극소수다.

부모 모두 또는 어느 한쪽이 불법체류자인 아동은 4,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는 주민등록번호도 외국인등록번호도 없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비가 만만치 않다. 정부가 베푸는 혜택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주는 게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무부가 이들의 인권을 고려해 학교장에게 불법체류자 신고의무를 면제해주고 출국유예 제도를 운영하는 정도다.

정작 이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8대 국회 때도 김동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이주아동권리보장 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채 폐기됐다. 불법체류 자체도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만 현행법상 불법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무슨 죄가 있나.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해당 학기나 학년을 마칠 때까지만이라도 불법추방을 늦추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힘든 직업을 기피하는 풍토와 고령화까지 겹친 마당에 언제까지 낡아빠진 혈통주의에 빠져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

독일은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도 양육수당과 교육수당을 제공한다. 불법체류 아동이라도 5년 이상 거주한 사실이 인정되면 무조건 영주권 신청자격을 얻고 영주권을 얻는 즉시 시민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이민법을 개정한다는 미국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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